“희망으로 온 예수와 함께 어두운 현실 바꿔 나가야”

입력 2017-06-06 00:01
위르겐 몰트만 박사(가운데)가 지난 1일 서울 강북구 한신대 신대원에서 ‘미완의 종교개혁’을 주제로 강연하고 있다. 왼쪽은 통역을 한 김균진 연세대 명예교수, 오른쪽은 논찬을 맡은 도올 김용옥 박사. 곽경근 선임기자

‘희망의 신학자’ 위르겐 몰트만(91) 박사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해 최근 방한했다. 연세대와 한신대, 장로회신학대 등에서 가진 순회 특강에서 그는 ‘칭의(구원)’와 ‘창조 신학’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관심을 모았다.

“하나님은 만물 안에 살아 계셔”

“하나님의 창조행위는 삼위일체의 사건입니다. 삼위일체적 창조론의 관점에서 볼 때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십니다.”

지난 2일 서울 광진구 장로회신학대 한경직기념예배당에서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의 영과 새 창조’를 주제로 한 강연에서 몰트만 박사는 “그동안 기독교 창조 신학이 하나님과 피조 세계를 지나치게 엄격히 구분했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만 화해시킨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혼란에 빠진 우주 사이에 평화를 가져온 것이기도 하다”며 “그리스도의 부활은 오순절 강림 사건으로 이어져 사도 교회를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도행전 2장에서 ‘모든 육체에 부어진 성령’이라는 표현은 모든 생명체에 성령이 부어지는 것을 뜻하는 것”이라며 “교회의 지평은 온 우주다”라고 덧붙였다.

몰트만 박사의 제자인 김명용 전 장신대 총장은 “몰트만 박사는 창조주와 피조물을 극단적으로 구분하는 신학적 흐름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 것”이라며 “창조주와 피조물은 구분되지만 하나님의 영이 피조물에 내재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는 걸 그가 강조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몰트만 박사와 신학도들 간 질의응답도 이어졌다. ‘하나님이 모든 피조물 안에 살아 계신다’는 몰트만 박사의 관점이 범재신론(만물에 신이 있다는 이론)이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모든 사물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게 아니라 하나님이 세계 만물 안에 있다고 보는, 정반대의 관점”이라고 답변했다. 김 전 총장은 “몰트만 신학의 핵심은 교회의 역사에 대한 책임”이라며 “그가 말한 희망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가 어두운 역사 속에서 희망으로 다가왔듯이 그리스도인들 역시 예수와 함께 현실을 바꿔나가야 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평화 세우는 교회로 연합해야”

앞서 지난 1일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 한신대 신학대학원 예배당 강단에 선 몰트만 박사는 “악을 행한 죄인의 용서에만 관심을 가질 게 아니라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피해 입은 희생자(또는 피해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미완의 종교개혁’을 주제로 진행된 특강에서 그는 “칭의론의 핵심은 불의한 죄인이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라며 “기존 칭의론은 주로 가해자의 악행에 초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만일 피해자가 악을 악으로 되갚으려 한다면 정의가 서는 대신에 악이 두 배로 늘어날 뿐”이라며 피해자의 용서에 큰 의미를 부여했다.

몰트만 박사는 또 16세기 종교개혁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에큐메니컬(교회의 일치·연합)적 교회를 강조했다. 그는 “당시 종교개혁은 서유럽의 라틴 교회에서만 일어났지 동방정교회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면서 “신성로마제국의 전통 속에서만 일어났고 기존교회를 대상으로 한 종교개혁에 그쳤다”고 한계점을 꼽았다. 이 같은 결과는 당시 종교개혁이 기존 교회를 재형성했을 뿐, 하나님 나라를 위해 세상으로 향하는 교회를 이뤄내지 못했다는 게 몰트만 교수의 견해다.

그는 이어 “그리스도의 교회는 에큐메니컬적인 교회, 즉 하나의 교회로 나아가야 한다”면서 “평화롭지 못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평화를 세우는 교회로 연합해가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논찬자로 나선 도올 김용옥 박사는 “몰트만의 사상은 세상의 종말을 폐쇄적이거나 파괴적으로 설정하지 않고 개방적이고 건설적으로 설정하고 있다”면서 “그는 미래를 희망, 곧 부활에 대한 희망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박사는 또 “마르틴 루터가 ‘오직 믿음으로’를 외치며 개혁에 나섰다면 몰트만 박사는 희망의 신학을 바탕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것”이라며 “믿음과 삶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복음이 이 땅에 온전히 서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박재찬 구자창 기자 jeep@kmib.co.kr, 사진=곽경근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