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차 내과 레지던트 이모(29)씨는 최근 80대 여성 A씨를 진료하다가 황당한 일을 겪었다. A씨의 병명은 ‘편도 주위 농양’이었다. 편도 주위에 고름이 있어 배농(排膿·고름을 빼냄)을 하고 항생제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이씨는 설명했다. 보호자로 온 A씨의 딸은 “인터넷에서는 배농만 하면 된다고 했다”며 “오히려 항생제 오래 쓰면 내성만 생긴다”고 반박했다.
A씨는 편도 주위 농양에 항생제를 쓰지 않으면 패혈증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상태였다. 이씨가 “30분 찾아본 것과 10년 공부한 것 중 뭐가 더 정확하겠느냐”고 딸을 설득해 겨우 항생제 주사를 맞혔다.
의사보다 인터넷에서 찾은 증상·처방을 더 믿는 현상이 만연하다. 인터넷 정보만 믿고 “내 병, 내 가족 병은 내가 더 잘 안다”며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따르는 식이다. 안아키(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카페는 극단적인 사례일 뿐 의료계에선 일종의 안아키즘이 이미 널리 퍼져 있다고 우려한다. 전문가들은 정보 과잉 시대에 의료계 불신 현상까지 겹쳐진 부작용이라고 입을 모았다.
대학원생 김모(24)씨는 몸이 불편할 때 인터넷을 먼저 찾는다. 지난 4월 피트니스센터에서 운동을 마친 뒤 심한 몸살기를 느낀 김씨는 포털 사이트에 관련 증상을 검색했다. 운동을 과하게 하면 일시적으로 겪는 ‘오버트레이닝’ 증상과 비슷했다. 처음 듣는 용어였지만 그럴싸했다. 다음 날 찾아간 병원에서는 위염 진단을 내렸다. 처방받은 약을 먹고 증상은 사라졌지만 김씨는 “의사가 진료를 오래하지 않아서 제대로 진단했는지 의문”이라며 못 미더워했다.
안아키의 경우 한의사가 왜곡된 치료법을 부추겨 더 문제가 됐다. 해당 온라인 카페는 사실상 활동을 중단했지만 시민단체 아동학대방지시민모임은 5일 “안아키식으로 아이들을 진료하는 한의사가 최소 12명이 더 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커지면서 대한의사협회도 지난달 26일 “사이비 치유법으로 인해 부작용이 초래되고 제때 적절한 의학적 치료중재가 이뤄지지 못해 증상이 악화되면 책임은 누가 지겠느냐”고 비판했다.
전문가들은 인터넷에서 검증되지 않은 정보가 유통되면서 안아키와 같은 현상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는 “인터넷에는 거짓 정보가 너무 많기 때문에 위험하다”며 “어떠한 방법으로 누가 나았다는 건 단순 경험담이지 의료가 아니다”고 강조했다. ‘근거 중심 자연주의 육아 초록처방전’ 저자 박지영 가정의학과 전문의도 “현대사회에는 의학정보가 많이 퍼져 있는데 이러한 정보를 조각조각 받아들이다 보면 불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했다.
안아키즘 확산 현상에는 의료계도 책임이 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 변혜진 상임연구위원은 “그동안 병원에서는 환자가 정확히 어떤 상태이고 왜 이런 처방이 필요한지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던 부분이 있다”며 “안아키나 인터넷 정보를 믿는 이들을 단순히 무지하거나 정보가 없다고만 단정할 게 아니다”고 꼬집었다.
대한의사협회 관계자도 “(의료계가) 부족했던 점을 인정한다”며 “저희가 해결해야 할 부분”이라고 인정했다. 이 관계자는 “환자들도 납득하지 못하는 부분은 전문가와 상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박지영 전문의는 “의사는 진료 과정에서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수용자(환자)는 설명을 듣고 기존 지식과 통합해 나가는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임주언 이재연 기자 eo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
“내 병, 인터넷서 보니까”… 섣부른 진단 큰 병 부른다
입력 2017-06-06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