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선수들 응원 ‘보약’… ‘기부천사’ 김인경, 우승컵 ‘번쩍’

입력 2017-06-06 05:00
김인경이 5일(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스탁턴 시뷰 호텔 앤드 골프클럽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클래식 최종 3라운드에서 아이언샷을 날리고 있다. AP뉴시스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 AP뉴시스
소녀는 서울 한영외고 1학년이던 2005년 혼자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세계적인 골퍼가 되고 싶었다. 낯선 미국에서 물어물어 유명한 스윙코치 게리 길크리스트가 운영하는 국제주니어골프아카데미(IJGA)를 찾아갔다. 그곳에서 펑샨샨(28·중국) 등과 동문수학한 소녀는 세계적인 골퍼로 성장했다. 간만 컸던 ‘똑순이’ 소녀 김인경(29)은 미국에서 기부 문화를 배워 손도 크고 마음도 넓은 ‘특별한’ 골퍼로 거듭났다. 그는 발달장애인들의 스포츠 대회인 스페셜올림픽 선수들을 위해 거액을 내놓았고 재능기부도 하고 있다. 5일(한국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숍라이트클래식(총상금 150만 달러)에서 우승한 후 그는 “스페셜올림픽 선수들의 응원이 큰 힘이 됐다”며 활짝 웃었다.

김인경은 이날 미국 뉴저지주 갤러웨이의 스탁턴 시뷰 호텔 앤드 골프클럽(파71·6155야드)에서 열린 대회 마지막 날 3라운드에서 버디 3개와 보기 1개를 묶어 2언더파 69타를 기록했다. 최종 합계 11언더파 202타의 성적을 거둔 김인경은 안나 노르드크비스트(9언더파 204타·스웨덴)를 2타 차로 따돌리고 우승을 차지했다. 지난해 10월 레인우드 클래식 이후 8개월 만에 다시 정상에 오른 김인경은 LPGA 투어에서 개인 통산 5승째를 거뒀다. 지난해 말 계단에서 넘어져 부상을 당한 김인경은 이후 후유증으로 고전하다 이번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며 부활을 알렸다.

한국 여자 프로골퍼들은 대부분 부모, 특히 아버지의 권유로 골프에 입문한다. 하지만 김인경은 다르다. 수영과 태권도, 피아노에 빠져 있던 김인경은 10세 때 친구가 골프대회 우승 트로피를 학교로 가져와 자랑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를 조른 끝에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외동딸에게 “열심히 하라”는 말을 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기만 했다.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골프를 배운 김인경의 플레이는 창의적이다. 키가 160㎝로 작아 드라이버샷 거리가 짧지만 창의적인 플레이로 이를 보완해 세계적인 선수로 성장했다.

김인경은 2005년 US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를 제패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알렸다. 2006년 12월 LPGA 퀄리파잉스쿨에서 공동 수석을 차지한 김인경은 2007년 LPGA 투어에 데뷔해 2008년 롱스 드럭스 챌린지, 2009년 스테이트 팜 클래식, 2010년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까지 3년 연속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김인경은 투어 생활을 하다 보니 많은 선수들이 어려운 이웃을 위해 자선단체를 후원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작은 사랑을 실천하기로 한 김인경은 변진형 LPGA 아시아지사장을 통해 스페셜올림픽과 인연을 맺게 됐다. 특히 2010년엔 로레나 오초아 인비테이셔널 우승 상금 22만 달러의 절반을 오초아재단에 기부했고, 나머지는 스페셜올림픽 조직위원회에 쾌척했다. 이 인연으로 김인경은 2012년 스페셜올림픽 홍보대사로 위촉돼 레슨을 지도하는 등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 대회를 개최한 숍라이트가 스페셜올림픽을 후원하고 있어 김인경의 우승은 더욱 의미가 깊다. 김인경은 우승 후 “이 대회에 출전하면 스페셜올림픽 선수들과 함께 워밍업도 하고 퍼트 연습도 하면서 내가 기운을 얻는다”며 “이들로부터 응원 문자도 받는다. 내가 스페셜올림픽의 일부가 될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했다.

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