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정부가 들어선 지 한 달 가까이 흘렀다. 나라다운 나라, 살맛나는 나라가 됐다는 말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국민 10명 중 9명 가까이가 문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박수를 보내고 있다.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바탕으로 문 대통령의 국정 운영도 거침이 없다. 연일 파격적인 소통과 인사 발표, 과감한 업무지시가 쏟아지고 있다. 개혁과 민생, 적폐 청산을 향한 도도한 흐름이 이어지고 있는 느낌이다.
이런 상황에서 부패하고 무능한 검찰 및 군 일부 세력과 함께 재계도 개혁 대상으로 거론되자 산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새 정부의 정규직 전환 정책에 우려를 나타냈다가 문 대통령으로부터 강력한 경고를 받은 뒤 더욱 그렇다.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5일 “죽은 듯이 엎드려 있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 무슨 일을 하겠느냐”고 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새 정부 경제정책 방향이 어디로 흘러갈지 예의주시하고 있다”면서도 “왠지 불안하고 걱정이 된다”고 털어놨다.
이는 일부 대기업이 자초한 측면이 크다. 지난해 12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관련 국조특위 청문회에 대기업 총수 8명이 출석했다. 청문회와 이후 특검 조사에서는 대기업도 국정농단에 한몫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고질적인 정경유착과 나쁜 관행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면서 국민의 지탄을 받았다. 촛불민심을 기반으로 탄생한 새 정부는 이런 국민들의 반(反)대기업 정서를 외면할 수 없다.
일부 대기업은 그동안 정경유착을 통한 반칙과 편법 등으로 부를 축적해 왔다. 공정사회를 최고의 가치로 삼고 있는 문재인정부는 이를 확실하게 바로잡겠다는 입장이다. 공정거래위원장과 청와대 정책실장 등 경제정책 방향을 결정할 핵심 인사를 보면 재벌 개혁에 대한 분명한 의지를 볼 수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지난 2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일감 몰아주기, 부당한 내부거래 등 대기업의 잘못된 관행을 근절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지난달 25일 인사청문회에서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젊은 대기업 총수들이 한 일이 별로 떠오르지 않는데 굳이 떠올리자면 골목상권 침범이 떠오른다”고 꼬집었을 정도다.
그렇다고 정부가 민주적인 시장경제 체제에서 기업을 단순히 윽박지르거나 협박한다고 통할 문제는 아니다. 과거 일부 정권에서 재벌을 강제로 해체시킨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지금은 그럴 힘도 명분도 없고, 그런 시대도 아니다. 국민들은 정경유착도 싫어하지만 산업계가 움츠리면서 경제가 위축되는 것도 원하지 않는다. 특히 과거 정권처럼 정부가 정상적인 기업 활동에 개입해 압력을 넣거나 시장을 왜곡시키는 일은 없어져야 할 적폐다. 오히려 공정경제를 위한 제도는 확실하게 구축하되 산업계와 손을 맞잡고 제대로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방안을 찾아야 한다. 그래야 투자도 늘고 일자리도 더 많이 창출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해 11월 당선되자마자 경제계 주요 인사를 만나며 경제정책을 조율했다.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서라면 세계적인 패권국가도 과감히 포기할 수 있다는 태세다. 지난달 당선된 개혁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취임 직후 프랑스경제인연합회, 중소기업협회 등 재계 대표들과 한 시간씩 일대일 면담을 했다.
반면 문재인정부에서는 기업이 안 보인다. 적어도 현 시점까지는 산업계가 철저히 소외되고 있다는 느낌이다. 일자리 창출이나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최저임금 인상 등은 새 정부가 추진하는 핵심 경제정책이다. 이는 노사정 3자가 협력하고 양보해야만 근본적으로 가능한 정책들이다. 최근 이와 관련된 경제정책이 잇따라 발표되고 있지만 논의 과정에서 중요한 핵심 축인 산업계는 전혀 역할이 없다. 문재인정부의 현장 중심, 소통 중심 국정운영 방식이 유독 산업계만 외면할 필요는 없다. ‘대기업=적폐세력’이란 왜곡된 이분법적 사고에 빠져선 안 된다. 나무만 보고 산은 보지 못하는 우를 범하지 않길 바란다.
오종석 편집국 부국장 jsoh@kmib.co.kr
[돋을새김-오종석] 산업계가 소외되고 있다
입력 2017-06-05 18:24 수정 2017-06-05 21: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