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아내에게 “아들에게서 1억원을 갚겠다는 각서를 받아오라”고 자꾸 요구했다. 아들에게 지원한 주택구입 자금 1억원 때문이었는데, 평소 이 문제로 다툼이 있던 아내는 A씨가 또 이야기를 꺼내자 이혼을 언급했다. 화난 A씨는 아내를 넘어뜨렸고 고혈압이 있던 아내는 의식을 잃었다. A씨는 아내의 목을 졸라 숨지게 했다. 이후 A씨의 자녀들이 법원에 “아버지에게 만이라도 효도하게 해 달라”고 탄원했다.
D씨는 무일푼인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다 불이 켜진 옆집에 흉기를 들고 침입했다. 여행 경비를 마련하려는 게 목적이었다. 그 집에서 자던 여성을 위협해 재갈을 물리고 양손 양발을 묶은 뒤 승용차·휴대전화·신용카드를 빼앗았다. D씨는 이후 이 여성을 자신이 있던 옆집으로 끌고 왔는데, 그가 강하게 저항하자 둔기로 머리를 마구 내려쳐 숨지게 했다. 범행 2시간여 뒤에는 빼앗은 신용카드를 사용했다. 범행 당시 술을 마셨지만 만취 상태는 아니었다.
C씨는 한 유부녀와 내연관계에 있었다. 이 내연녀의 남편이 C씨에게 “내 아내를 더 이상 만나지 말라. 집으로 찾아가겠다”고 전화하자 C씨는 욕설과 함께 찾아오라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C씨는 이 남성이 찾아오자 문을 열었는데, 이 남성이 C씨의 얼굴을 먼저 한 대 때렸다. 이에 C씨는 미리 준비한 흉기로 그를 두 차례 찔렀다. C씨는 주방에서 다른 흉기를 꺼내 들고 피를 흘리며 도망치는 남성을 쫓아갔다. 쓰러진 남성의 얼굴을 발로 찼다. 이 남성은 다음 날 숨졌다.
B씨는 술을 마시며 여러 사람과 함께 도박을 하던 중이었다. 그런데 B씨에게 돈을 잃은 한 남성이 화를 내며 도박판을 뒤엎었고, 둔기로 B씨의 이마를 때린 뒤 B씨의 돈 40만원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버렸다. B씨는 그의 집을 뒤쫓아가 돈을 돌려달라고 항의했지만 묵살당했다. 격분한 B씨는 그곳에 있던 흉기로 그 남성의 오른쪽 가슴을 한 차례 찔러 숨지게 했다. B씨는 이후 둔기로 맞고 돈을 빼앗긴 데 대한 정당방위임을 주장했다.
A, B, C, D씨는 형이 확정된 실사례들입니다. 살인죄에 대한 우리 법원과 독자 여러분의 판단을 비교해 보십시오. A씨는 징역 4년, B씨는 7년, C씨는 12년, D씨는 30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어딘가 이상한 기분이 든다면 꼭 독자 여러분뿐만은 아닐 겁니다. 법원 판단과의 괴리는 대검찰청과 국민일보가 공동으로 지난 4월 18일부터 3주간 진행한 살인범죄 처벌에 관한 인식조사 결과에서도 드러납니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이은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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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7-06-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