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한국 테니스의 ‘희망’ 정현(세계랭킹 67위)이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 남자 단식 3회전에서 일본의 니시코리 게이(9위)와 1박2일에 거쳐 풀세트 접전을 펼치고도 아쉽게 고개를 숙였다. 야속하게도 하늘이 도와주지 않았다. 전날 코트에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면서 경기가 순연됐고, 상승세를 탔던 정현으로선 못내 아쉬움으로 남았다.
정현은 4일(한국시간) 파리 롤랑 가로스 스타디움에서 열린 대회 남자 단식 3회전(32강)에서 니시코리와 3시간 52분 동안 혈투를 벌인 끝에 2대 3(5-7 4-6 7-6 6-0 4-6)으로 분패했다. 정현은 생애 첫 메이저대회 3회전에 진출해 한국인 사상 처음으로 대회 16강에 도전했다. 한국 테니스의 ‘전설’ 이형택이 2005년 대회에서 3회전에 오른 바 있다. 하지만 정현은 2015년 세계랭킹을 4위까지 끌어올렸던 강호 니시코리에게 패하며 메이저대회에서 개인통산 최고 성적을 낸 것에 만족해야 했다.
정현은 전날 1, 2세트를 니시코리에게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경기 후반으로 갈수록 상승세를 탔다. 3세트를 따낸 정현은 4세트에서도 3-0으로 앞서가며 니시코리를 강하게 압박했다. 경기 흐름도 급격히 정현 쪽으로 기울었다.
니시코리는 체력이 방전되면서 경기가 잘 풀리지 않자 짜증을 내기 시작했다. 급기야 코트 바닥에 자신의 라켓을 내던졌다. 니시코리의 멘탈은 거의 붕괴된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허리 부위에 통증까지 겹쳐 메디컬 타임아웃을 부르기도 했다. 갑자기 코트에 비가 뿌려졌고 경기는 중단됐다.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우천 순연이 결정됐다. 정현에게는 야속한, 니시코리에게는 행운의 비였다.
니시코리는 하루 뒤 재개된 경기에서 마음을 가다듬고 코트에 나왔다. 체력도 완전히 회복했다. 크게 뒤져 패색이 짙던 4세트를 정현에게 내주고 최종 5세트를 잡는 전략을 꺼냈다. 니시코리는 장기인 스트로크를 앞세워 경기 흐름을 가져갔다. 힘에서도 정현에 우위를 점했다. 정현은 최종 5세트에서 2-5로 뒤지다 4-5로 따라붙는 저력을 보여줬지만 넘어간 경기 흐름을 가져오지 못했다.
정현은 “메이저대회 3회전에 처음 올라 좋은 경험을 쌓았다. 톱 랭커인 니시코리와 경기를 해서 영광스럽다”고 소감을 밝혔다. 니시코리는 스포츠 닛폰 등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정신적으로 힘들었지만 비로 경기가 하루 순연된 건 행운이었다. 허리통증을 회복할 시간을 벌었다”고 말했다.
박구인 기자
비만 안 왔어도… 정현, 日 니시코리 잡을 수 있었는데
입력 2017-06-04 20:58 수정 2017-06-05 00: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