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억대 땅 노리고… 정신질환 재력가 노인 강제 입원

입력 2017-06-05 00:00 수정 2017-06-05 05:00

정신질환이 있는 노인에게 50억원 상당의 땅을 빼앗고, 이 노인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킨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한모(67)씨는 1980년대에 무역회사를 운영했다. 수출 호황기였던 만큼 큰돈을 손에 쥐었다. 호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무역회사는 경영난을 겪다가 1990년대 초 파산했다. 그 많던 돈도 다 날아갔다. 한씨에게 남은 것은 땅밖에 없었다. 서울 서초구 양재동에 100평, 강동구 성내동에 70평이었다. 넓진 않았지만 알짜배기 땅이어서 시세는 계속 올랐다. 둘을 합치면 현재 시세로 50억원은 됐다.

한씨는 부동산을 활용할 줄 몰랐다. 양재동 땅은 직접 주차장으로 운영했고, 성내동 땅은 목적 없이 내버려뒀다. 무역회사가 파산할 때 충격으로 1990년대 초부터 정신질환을 앓았기 때문이다. 합리적인 판단도, 원활한 의사소통도 불가능했다. 그를 돌봐줄 가족이나 친척도 없었다. 한씨는 1993년부터 양재동 주차장 한쪽에 컨테이너박스를 두고 그 안에서 생활했다.

한씨가 ‘사기꾼들의 먹잇감’으로 포착된 것은 2014년 말이다. 양재동 토박이인 박모(57)씨가 그의 사연을 듣고 부동산 투자회사를 운영하던 정모(45)씨에게 전달했다. 정씨와 박씨는 한씨 땅을 갈취하기로 했다. 우선 2015년 1월 정씨의 지인인 김모(61·여)씨를 한씨와 서류상 혼인관계로 만들었다. 한씨 땅을 쉽게 팔고 한씨의 거취를 좌지우지하기 위해서였다. 정씨 등은 김씨에게 범행이 성공하면 빌라 한 채를 주기로 약속했다.

일당은 한씨의 컨테이너박스에 쳐들어갔다. 이들은 자신을 “국가안전기획부(안기부) 직원”이라고 소개하고 한씨를 전기충격기 등으로 위협했다. 이들은 한씨가 부동산 매도용 인감증명 등 필요한 서류를 떼도록 지시하고 감시했다. 결국 이들은 2015년 2월엔 양재동 땅, 4월엔 성내동 땅을 팔아치워 세금을 제하고 약 30억원을 챙겼다.

정씨 등은 7개월 동안 충북 청주 등 지방 모텔을 돌아다니며 한씨를 감금했다. 또 ‘완전 범죄’를 위해 한씨를 2015년 12월 전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시켰다. 김씨가 혼인관계로 돼 있었기 때문에 김씨가 원하면 전문의 1명의 결정만으로 한씨를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킬 수 있었다.

그간 보호자와 전문의 1명의 동의만 얻으면 강제 입원할 수 있는 법의 허점을 이용해 재산을 노리고 가족을 정신병원에 강제 입원시키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지난달 30일부터 2주 입원 초과 시 타 전문의 동의 등을 받게 하는 등 정신병원 강제 입원 요건을 강화하는 새로운 정신건강복지법을 시행했다.

서울경찰청 광역수사대는 올 4∼5월 정씨 일당 총 8명을 붙잡아 형사입건했다. 이 중 정씨 박씨 등 4명은 특수강도 특수감금 등 혐의로 구속하고, 모텔에 감금된 한씨를 감시한 2명은 불구속 입건했다. 나머지 2명은 다른 사기 사건으로 이미 구속된 상태였다. 경찰에 따르면 정씨 등은 땅을 팔고 챙긴 돈을 부동산 투자 실패와 강원랜드 카지노로 탕진했다.

한씨는 현재도 전북의 한 정신병원에 입원해 있다. 경찰에 따르면 한씨는 자신의 토지가 팔렸다는 사실도 알지 못하고 있다. 경찰은 한씨의 치료·생계비와 법률 지원을 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

윤성민 기자 wood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