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대통령집무실 시대가 열릴 것으로 기대되면서 삼청동과 함께 서울 종로구 팔판동 부동산이 벌써부터 들썩거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반면 일각에서는 삼청동의 젠트리피케이션(임대료 상승에 따라 원주민이 내몰리는 현상)이 확장될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팔판동은 청와대 입구와 삼청파출소 인근 동네로 북쪽으로는 삼청동, 서쪽으로는 청운동과 세종로가 있다. 동명은 조선시대에 이 구역에 8명의 판서가 살았다는 데서 유래했다. 8명의 판서가 누구인지는 정확히 전해지지 않았다. 다만 주요 관아가 경복궁 남쪽에 위치해 있어 판서들이 직장과 주거지 거리를 고려해 경복궁 동북쪽인 이곳에 거주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팔판동은 그간 삼청동, 북촌 한옥마을 등 주변 관광 명소에 비해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한 동네였다. 하지만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분위기가 변했다. 문 대통령이 집무실을 광화문으로 이전하고 가까운 곳에서 국민과 소통하겠다고 공약했기 때문이다. 그는 “청와대를 역대 대통령 박물관, 기념관, 공원 등의 형태로 만들어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청와대·경복궁·광화문·종묘에 이르는 ‘대한민국 역사, 문화거리’를 조성하겠다”고 했다. 문 대통령의 공약이 실현될 경우 청와대에서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팔판동은 관광 중심지로 급부상할 수 있다.
지난 2일 삼청동 인근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물건 팔려고 내놨던 사람들도 회수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청와대가 개방되면 땅값이 지금보다 30% 정도 오를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계동 인근 부동산 관계자도 “아직 거래가 실질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있지만 기대감이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오르기 시작하면 기존 평당 3000만∼5000만원대에서 50%까지도 오를 수 있다고 전망한다”고 했다.
주민들 분위기도 땅값이 오를 것이란 기대감이 형성돼 있었다. A씨(49·여)는 “인근에서 촛불집회, 태극기집회가 계속되면서 임대료가 낮아졌지만, 정권이 바뀐 이후 기대감이 커진 것은 맞다”고 했다. 강모(52)씨도 “팔판동에 빈집이 많았는데 최근에 건물 매매가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지긴 한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땅값, 집값이 오르면 세 들어 사는 주민이나 자영업자가 물어야 할 임차료가 덩달아 뛰기 때문에 입주 세입자들의 한숨은 깊어지고 있다. 인근에서 음식점을 운영하는 박모(55)씨는 “청와대 개방한다고 해도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 건물주들만 좋은 거지”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가게를 팔려고 내놨다”고 말했다. 윤모(47)씨도 “임대료가 오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전문가들은 상황을 속단하기는 이르다면서도 만일 정부가 대통령집무실 이전을 결정했다면 이에 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일 부동산인포 리서치팀장은 “기대감으로 땅값이 오를 수 있는 있지만 상황이 장기간 지속되느냐를 보는 것도 중요하다”며 “현재 정책에 따른 변화를 지켜봐야 할 때”라고 설명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땅값이 오르면 젠트리피케이션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정부가 집무실을 이전하고 청와대를 개방하기로 정했다면 미리 빈 토지를 매입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세입자나 지역 주민들의 피해를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사진=허경구 이가현 기자 nine@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광화문시대 열린다”… 팔판동 부동산이 들썩
입력 2017-06-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