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의 부국 카타르가 미국 연방수사국(FBI)에 자국에서 발생한 해킹 사건을 수사해 달라고 요청했다. 자국 사건을 외국 정부기관에 수사 의뢰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다.
2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카타르 매체 알자지라에 따르면 FBI는 이런 요청에 응해 최근 수사팀을 카타르 수도 도하에 보내 수사를 벌이고 있다.
카타르가 외국 수사기관을 끌어들인 것은 ‘객관적인 수사’를 위해서다. 카타르 국영통신인 QNA는 지난달 24일 카타르 국왕 셰이크 타밈 빈하마드 알타밈의 연설 기사를 내보냈다. 기사에 따르면 국왕은 군사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미국과 중동 주변국들의 대이란 적대정책을 비판했고, 일부 나라에서 테러단체로 규정한 무슬림형제단과 하마스를 포용하자고 주장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곧 물러날 것 같다는 발언도 했다.
기사가 나가자 카타르는 해킹에 의한 ‘가짜 뉴스’라면서 즉각 삭제했다. 하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 등의 매체들은 “카타르의 속내를 알 수 있는 진짜 뉴스”라면서 카타르를 비판하는 기사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 이에 카타르는 제3국 수사기관이자 연설에서 비판의 당사국으로 지목된 미국의 FBI를 통해 결백을 입증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카타르와 다른 걸프국들이 얼마나 서로를 불신하는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카타르는 이전에도 이란과 테러단체에 유화적 태도를 취해 주변국들과 외교적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카타르는 1990년대 자국과 국경 분쟁을 벌인 사우디를 견제하고, 북부 해상 가스전의 안정적인 생산을 위해 ‘해상 이웃’인 이란과 잘 지낼 필요가 있었다. 또 소국이어서 정치적 안정을 위해 테러단체들과의 불필요한 마찰도 피하는 정책을 취해 왔다.
구성찬 기자
“억울함 풀어달라” 카타르가 FBI 찾아간 사연
입력 2017-06-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