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스타 선수 출신은 명장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선수때 워낙 잘하면 감독이 된 뒤 눈높이가 높아 선수들과의 융합 및 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식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지네딘 지단(45) 감독 앞에선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선수로서 레전드로 대접받던 지단 감독은 사령탑에 데뷔한 지 불과 1년 5개월 만에 우승컵 4개를 휩쓸며 명장 반열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며 스타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인화에다 상대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수시로 구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줬다.
레알 마드리드가 4일(한국시간) ‘별들의 무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사상 최초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덕장+지장’ 지네딘 지단만이 가능했던 성과물이었다.
지단 감독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유벤투스(이탈리아)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전성기를 보냈다. 선수 시절 월드컵(1998년), 유로선수권(2000년), UCL챔피언(2002년) 등 거의 모든 국제경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세계축구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 지단은 지난해 1월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임 베니테스 감독의 성적부진에 따라 급히 스타 군단을 맡게 된 지단은 그러나 지도자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령탑 데뷔 후 불과 4개월여만인 지난해 5월 지단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를 5년 만에 UCL 정상에 올려놨다. 이어 그해 8월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에서 두 번째 우승을 맛본 뒤 올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UCL 우승을 차례로 일궈냈다. 조세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 알렉스 퍼거슨 등 세계 최고 명장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축구계의 새 역사를 써가고 있다.
지단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팀 전체를 아우르는 통솔력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형님 리더십’이다. 젊은 개성이 강한 스타선수들도 지단 감독에게 존경을 표하며 뒤를 따른다.
특히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다루는 법이 돋보였다. 올 시즌 UCL 우승을 목표로 잡은 지단 감독은 호날두를 리그 29경기에만 출전시켜 체력을 안배했다. 최근 6시즌 중 호날두가 30경기 미만으로 출전한 것은 처음이다. 호날두가 32세로 나이가 적지 않고 팀에 그를 대체할 공격수가 있다는 걸 감안한 것이다. 통상 스타들은 출전시간이 줄어들면 불만을 드러내곤 하지만 호날두는 감독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신 호날두를 출전시킬때는 4-3-1-2 포메이션을 가동해 특유의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전술을 꺼내들었다.
속칭 ‘선수빨’로 쉽게 우승한다는 주변의 시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단 감독은 자신만의 탁월하고 유연한 전술 운용으로 이런 편견을 지웠다. 올 시즌 본격 가동한 로테이션 시스템을 통해 모라타와 이스코, 아센시오 등 주전 같은 비주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이날 경기서 주전인 가레스 베일을 빼고 발이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이스코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은 신의 한수로 꼽혔다. 또 경기 때마다 이름값이 아닌 견고한 조직력을 강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날 영국 웨일스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UCL 결승에서 19년 만에 만난 유벤투스를 4대 1로 완파했다. 1992-1993시즌 UCL 대회가 개편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호날두는 멀티골로 활약하며 지단 감독의 품에 4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호날두는 지단 감독에 대해 “1-1로 전반을 마친 상황에서 감독이 하프타임에 우리에게 ‘너희들을 정말로 믿는다’며 긍정적인 말을 해줬다. 후반의 완승은 지단 감독의 격려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단 감독은 UEFA와의 인터뷰에서 “이 클럽은 내 심장과 같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성취한 것을 즐기는 일이다. 우리는 조금 쉰 뒤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잉글랜드의 축구 레전드 앨런 시어러는 “지단 감독이 훌륭한 선수들을 잘 다룬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라며 지단 감독을 추켜세웠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
지단, 명장의 주단을 깔다
입력 2017-06-05 05: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