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단, 명장의 주단을 깔다

입력 2017-06-05 05:03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레알 마드리드 선수들이 4일(한국시간) 영국 웨일스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결승에서 유벤투스(이탈리아)를 꺾고 대회 2연패를 확정한 뒤 시상식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AP뉴시스
레알 마드리드의 지네딘 지단 감독이 UCL 우승 트로피를 들고 환하게 웃는 모습. AP뉴시스
흔히 ‘스타 선수 출신은 명장으로 성공하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선수때 워낙 잘하면 감독이 된 뒤 눈높이가 높아 선수들과의 융합 및 소통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공식은 레알 마드리드(스페인)의 지네딘 지단(45) 감독 앞에선 통하지 않은 것 같다.

선수로서 레전드로 대접받던 지단 감독은 사령탑에 데뷔한 지 불과 1년 5개월 만에 우승컵 4개를 휩쓸며 명장 반열에 올라 세계를 놀라게 했다. 남의 말에 귀를 잘 기울이며 스타 선수들의 마음을 잘 헤아린 인화에다 상대팀에 따라 맞춤형 전술을 수시로 구사한 전략가로서의 면모를 동시에 보여줬다.

레알 마드리드가 4일(한국시간) ‘별들의 무대’ 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UCL)에서 사상 최초로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은 ‘덕장+지장’ 지네딘 지단만이 가능했던 성과물이었다.

지단 감독은 1990년대 후반과 2000년대 초 유벤투스(이탈리아)와 레알 마드리드에서 최전성기를 보냈다. 선수 시절 월드컵(1998년), 유로선수권(2000년), UCL챔피언(2002년) 등 거의 모든 국제경기 우승컵을 들어올리며 세계축구의 전설로 자리매김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을 끝으로 은퇴한 지단은 지난해 1월 레알 마드리드의 지휘봉을 잡았다. 전임 베니테스 감독의 성적부진에 따라 급히 스타 군단을 맡게 된 지단은 그러나 지도자 경험 부족에 대한 우려를 씻어내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사령탑 데뷔 후 불과 4개월여만인 지난해 5월 지단 감독은 레알 마드리드를 5년 만에 UCL 정상에 올려놨다. 이어 그해 8월 유럽축구연맹(UEFA) 슈퍼컵에서 두 번째 우승을 맛본 뒤 올 시즌 스페인 프리메라리가와 UCL 우승을 차례로 일궈냈다. 조세 무리뉴와 펩 과르디올라, 알렉스 퍼거슨 등 세계 최고 명장들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성장하며 축구계의 새 역사를 써가고 있다.

지단 감독의 가장 큰 장점은 팀 전체를 아우르는 통솔력과 부드러움을 겸비한 ‘형님 리더십’이다. 젊은 개성이 강한 스타선수들도 지단 감독에게 존경을 표하며 뒤를 따른다.

특히 ‘슈퍼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를 다루는 법이 돋보였다. 올 시즌 UCL 우승을 목표로 잡은 지단 감독은 호날두를 리그 29경기에만 출전시켜 체력을 안배했다. 최근 6시즌 중 호날두가 30경기 미만으로 출전한 것은 처음이다. 호날두가 32세로 나이가 적지 않고 팀에 그를 대체할 공격수가 있다는 걸 감안한 것이다. 통상 스타들은 출전시간이 줄어들면 불만을 드러내곤 하지만 호날두는 감독의 뜻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대신 호날두를 출전시킬때는 4-3-1-2 포메이션을 가동해 특유의 폭발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맞춤형 전술을 꺼내들었다.

속칭 ‘선수빨’로 쉽게 우승한다는 주변의 시기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지단 감독은 자신만의 탁월하고 유연한 전술 운용으로 이런 편견을 지웠다. 올 시즌 본격 가동한 로테이션 시스템을 통해 모라타와 이스코, 아센시오 등 주전 같은 비주전을 효율적으로 활용했다. 이날 경기서 주전인 가레스 베일을 빼고 발이 빠르고 개인기가 좋은 이스코를 공격형 미드필더로 기용한 것은 신의 한수로 꼽혔다. 또 경기 때마다 이름값이 아닌 견고한 조직력을 강조해왔다.

레알 마드리드는 이날 영국 웨일스 카디프 밀레니엄 스타디움에서 열린 2016-2017 UCL 결승에서 19년 만에 만난 유벤투스를 4대 1로 완파했다. 1992-1993시즌 UCL 대회가 개편된 이후 사상 처음으로 대회 2연패를 달성한 것이다. 호날두는 멀티골로 활약하며 지단 감독의 품에 4번째 우승컵을 안겼다.

호날두는 지단 감독에 대해 “1-1로 전반을 마친 상황에서 감독이 하프타임에 우리에게 ‘너희들을 정말로 믿는다’며 긍정적인 말을 해줬다. 후반의 완승은 지단 감독의 격려에 힘입은 것”이라고 말했다. 지단 감독은 UEFA와의 인터뷰에서 “이 클럽은 내 심장과 같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우리가 성취한 것을 즐기는 일이다. 우리는 조금 쉰 뒤 다음 시즌을 준비한다”고 우승 소감을 전했다.

잉글랜드의 축구 레전드 앨런 시어러는 “지단 감독이 훌륭한 선수들을 잘 다룬 것은 충분히 칭찬받을 일”이라며 지단 감독을 추켜세웠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