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의 양형에는 반드시 이유가 있다. 징역 4년형이 선고된 A씨의 범행은 참작동기 살인(동기에 있어 특히 참작할 사유가 있는 살인범행)으로 분류됐다. 여기에 유족인 A씨의 자녀들이 “A씨에게라도 효도하며 살게 해 달라”고 처벌 불원 취지로 탄원한 점은 특별양형인자로서 감경요소가 됐다. 이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징역 3∼5년을 권고한다. 재판부는 A씨가 범행 직후 죄책감에 시달려 극단적 선택을 꾀한 점, 고령인 A씨가 잘못을 뉘우치는 점 등도 참작했다.
흉기를 호주머니에 넣어둔 채 내연녀의 남편이 찾아오길 기다렸던 C씨의 경우는 보통동기 살인(원한관계, 가정불화, 채권채무관계 등으로 인한 살인범행) 유형에 해당한다. 양형기준에 따라 권고되는 형의 범위는 징역 10∼13년이었는데, 계획적 범행이라는 점은 특별가중요소로 작용했다. 재판부는 C씨가 피해자 아내와 불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불순한 동기에서 저지른 살인이라는 점도 지적했다. 다만 C씨가 먼저 얼굴을 한 대 맞는 폭행을 당하자 이에 대응해 몸싸움을 벌이다 다소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점, 진지한 반성이 있다는 점 등이 감경요소가 됐고, 결국 징역 12년형이 선고됐다.
법조인들이 4가지 사례 가운데 가장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본 D씨의 범행은 판결문에서 중대범죄 결합 살인으로 드러나 있다. 잔혹한 범행 수법 등이 피고인에게 불리한 정상이었고, 이때 권고형은 징역 25년 이상이었다. 다만 재판부는 D씨가 범행을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고, 소년보호처분 이외에 별다른 범죄전력이 없는 점 등을 참작할 만한 사정으로 꼽았다.
판결문마다 나름의 양형 이유가 있고 상급법원에서 재차 판단을 거쳐도 형량은 결국 같았다. 하지만 4일 대검찰청과 국민일보의 공동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반인들은 이렇게 살인범죄에 대해 제시돼 온 법원의 결론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한 국민 10명 중 8명 이상은 살인범죄에 대한 법정형과 양형기준이 모두 낮은 수준이라고 응답했다.
국민적 법 감정만큼 돌출된 인식으로 보기에는 어렵지만, 법조인들도 현재의 살인범죄 처벌 수준에 대해 불만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검사 중 51.8%는 법정형 처벌 수준이 낮다고, 68.2%는 양형기준 처벌 수준이 낮다고 응답했다. 변호사와 교수 집단에서는 법정형 처벌 수준이 적정하다는 응답 비중이 과반이었다. 다만 이들 집단에서도 A B C D씨의 구체적 사례에서 적당한 처벌 수준을 물었을 때에는 법원의 실제 판단보다 높은 형량을 제시했다.
살인범죄는 여타의 범죄에 비해 피해 회복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중대성을 띤다. 이 살인범죄에 대한 우리나라의 법정형은 1953년 9월 형법 제정 이후 계속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이라는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인명 훼손이라는 중대성에 비춰보면 ‘5년 이상 징역’으로 제시되는 법정형 자체가 너무 낮다는 의견이 많다. 대검찰청의 설문조사 결과다.
구체적인 사례에서 살인범죄 처벌에 고려돼야 할 가중요소와 감경요소는 의외로 많다고 한다. 하지만 고려할 인자가 많다고 해서 최종 처벌 수준의 판단을 현행법과 법관의 재량에만 맡겨야 하겠느냐는 목소리도 크다. 취재 과정에서는 “지나친 작량감경(법관 재량의 형 감경)이 이뤄지는 게 아닌지 법원 스스로도 반성해 봐야 한다”고 말하는 법조인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과연 사회적 안전망이 일반적인 인식만큼이나 잘 작동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의구심은 나날이 커진다. 경제상황의 악화와 스트레스의 가중 속에서 연쇄살인과 ‘묻지마 살인’이 계속되는 문제도 크다. 살인범죄로 무기징역 이상의 형을 선고받는 비중은 2011년 이후 1%대를 기록 중이다. 동시에 해마다 50명 안팎은 살인을 저질렀던 이들의 재범에 의해 희생당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야간보행 안전도는 상시 테러위협에 노출된 이스라엘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경원 양민철 기자 neosarim@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관련기사 보기]
[살인죄 처벌 인식조사] 검사 51.8% “살인범죄, 법정형 처벌 수준 낮다”
입력 2017-06-05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