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 뇌섹 아재들도 통했다… 나영석 매직ing

입력 2017-06-05 00:00
tvN 새 예능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의 한 장면. 저녁상에 둘러 앉아 주거니 받거니 수다를 늘어놓는 황교익 유시민 유희열 정재승 김영하(왼쪽부터). 이른바 ‘잡학 박사’들의 여행기를 다룬 이 프로그램은 현대인의 지적 욕구를 충족시키며 색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tvN 제공

“기존의 예능들이 눈이 즐거워지는 프로그램이었다면 우리는 ‘뇌가 즐거워지는 프로그램’이다. 단순한 웃음과는 다른 차원의 재미와 지적 유희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나영석(41) PD의 자신감에는 이유가 있었다. 지난 2일 첫 방송된 tvN ‘알아두면 쓸데없는 신비한 잡학사전’(이하 ‘알쓸신잡’)은 인문학과 여행의 결합이라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 최근 불어 닥친 인문학 열풍을 나 PD의 전문분야인 여행 버라이어티로 승화시킨 것이다.

‘꽃보다 시리즈’ ‘삼시세끼’ ‘신서유기’ ‘윤식당’ 등 나 PD의 전작들과 달리 유명 배우나 예능인 한 명 등장하지 않는다. 전 보건복지부 장관이자 작가 유시민(58),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55), 소설가 김영하(49), 물리학자 정재승(45) 등 네 사람이 여행길에서 나누는 대화들이 이 프로그램의 강력한 무기다.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정치 경제 미식 문학 과학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이 각자 다른 지식 보따리를 풀어낸다. ‘아재들의 수다가 얼마나 재미있을까?’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적지 않았으나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알쓸신잡’ 1회 평균 시청률은 5.4%(닐슨코리아·전국 유료플랫폼 가구 기준)를 기록했다.

이들의 첫 여행지는 통영. 목적지로 향하는 버스 안 풍경은 이렇다. 점심메뉴를 고민하던 황교익이 통영의 별미 복국·장어탕 등을 소개하면, 유시민은 통영 여행의 필수코스 미륵산 케이블카를 타러 가자고 제안한다. 한참 수다를 떨던 두 사람이 잠든 이후 김영하는 통영 출신 소설가 박경리(1926∼2008)의 소설 ‘김약국의 딸들’을 조용히 꺼내 읽는다.

충렬사, 백석 시인의 시비, 거북선, 박경리 기념관 등 통영 곳곳을 둘러본 출연자들은 저녁식사 때 한 자리에 모여 각자의 하루를 나눈다. ‘장어는 정말 정력에 좋을까’ 등 단순한 호기심에서 출발한 대화는 이리저리 흐르고 흘러 미토콘드리아DNA에 대한 설명으로까지 이어진다. 프로그램 제목대로 알아도 그만, 몰라도 그만인 이야기들인데 묘하게 빠져든다.

개성 강한 출연자들 사이에서 윤활유 역할을 해준 건 서울대 작곡과 출신 가수 유희열(46)이다. 진행자로 합류한 그는 ‘바보’ 역을 자처했다. 멍한 얼굴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다”며 감탄을 하다가도 순간순간 절묘한 질문을 던지며 흐름을 잡아준다.

앞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 유희열은 “어떤 지역에 가든 (네 분은) 그곳의 인물 음식 역사 문학에 대해 모르는 게 없으시더라”며 “내가 여행을 가서 이렇게 다양한 지식과 정보를 얻을 기회가 있을까 싶다. 최고의 여행 가이드 서적을 분야별로 4권 가지고 다니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나 PD는 “진짜 재미있다. 보시면 안다”고 자신했다. “‘아무것도 안 하고 남 얘기만 듣는 건데 왜 이렇게 재미있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획 단계에선 부담이 있었지만 녹화하고 편집을 하면서 점차 확신으로 바뀌었어요. 대중도 이런 프로그램을 원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