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핏 보면 비슷하거나 단순한,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매우 복잡한 사안에 대해 사람들끼리 언쟁을 하다보면 좌중의 가장 연장자면서, 유순해 보이며, 삶의 지혜가 있어 보이는 분이 하는 말은 이렇다. “자자. 그만들 해요.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지만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어간 일들 중에 나중까지 좋았던 적은 거의 없었다. 왜냐하면 ‘좋은 게 좋은 것’은 그동안 내내 ‘좋았던’ 이들에게나 좋지, ‘나빴던’ 이들에게는 계속 나쁜 상태를 유지하라는 것일 뿐이다. 누군가의 ‘희생’을 담보로 하는 ‘좋은 게 좋은 것’은 그 누군가의 희생을 끝까지 강요하는 폭력이다.
요즘은 ‘아무거나 걸핏하면 폭력’이라 한다고. ‘좋은 게 좋은 거니까 주의자’들에겐 이런 말도 조심스럽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아무거나’엔 자신들도 희생하고 참았던 일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많은 이들이 참고 살았는데. 이제 와 문제 삼으려는 이들을 ‘덕’도 ‘참을성’도 없는 이들로 치부해버리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갈등이 일어났을 때 ‘해결’까지 가지 못하게 막으며, 벌어진 문제를 덮어버려 ‘임시적 평화’를 이룩하게 한다. 그렇게 이 세상의 참 평화는 늘 유보된다.
지치고 힘든 이들에게 ‘안온하고 평화로운 일상’은 매우 중요하다. 나 하나 참고, 희생하여 분란이 해소되고 평화로워진다면 기꺼이 희생하겠다며 참고 살아온 착한 이들이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착한 이들이 남에게 희생을 강요하는 못된 이들보다 더 나쁘다고 생각한다. 좋은 게 좋은 것은 진짜 좋은 게 아니다. 모두가 좋아야 진짜 좋은 것이다. 대부분 ‘좋은 게 좋은 것’이라고 넘어가려는 문제들은 가부장 사회 속에서 늘 ‘참고 사는 여성들’에게만 강요되어 왔고, 모든 권력관계 속에 소수자와 약자들에게만 강요된 ‘덕목’이다.
이제는 좋은 게 좋은 거라고 갈등을 덮으려는 이들에게 한마디만 하자. “그 좋은 것은 누구에게 좋은 건가요?” 그리고 안토니오 비발디의 이 음악을 들려주자. ‘세상에 참 평화 없어라.’
글=유형진(시인), 삽화=이은지 기자
[살며 사랑하며-유형진] ‘좋은 게 좋은 것’의 함정
입력 2017-06-04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