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닐라 카지노 총격·방화… 한국인 1명 등 37명 사망

입력 2017-06-02 18:30 수정 2017-06-02 21:13
2일 새벽 총격·방화 사건이 발생한 필리핀 마닐라 외곽의 리조트월드마닐라 카지노 건물에서 연기가 치솟고 있다. 복면을 한 40대 남성이 카지노에 들어가 총을 난사한 뒤 휘발유로 방화해 100여명의 사상자를 냈다. 오른쪽 사진은 범인이 M4 소총을 들고 카지노로 들어가는 모습. AP뉴시스
필리핀 수도 마닐라의 카지노 리조트에서 총격·방화 사건이 발생해 37명이 숨지고 70여명이 부상했다.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는 범행이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했으나 필리핀 경찰은 단순 강도 사건으로 추정하고 있다.

AP통신과 CNN방송 등에 따르면 2일 오전 1시30분쯤 필리핀 마닐라의 니노이 아키노 국제공항 인근에 있는 ‘리조트월드마닐라(RWM)’의 카지노에 복면을 쓴 남성이 들이닥쳐 M4 소총을 난사했다. 이 남성은 RWM 2층에 차를 세우고 곧바로 카지노로 들어가 대형 TV 스크린을 향해 총을 쏜 뒤 테이블에 휘발유를 붓고 불을 붙였다.

불이 번지면서 카지노 내외부와 위층으로 자욱한 연기가 급속히 퍼졌고, 고객들과 카지노 직원들이 대피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가 속출했다. 현지 언론은 방화로 연기가 자욱한 상태에서 대피하다 대부분 질식사했으며, 카지노의 2∼3층에서만 34명가량이 숨진 채 발견됐다고 보도했다. 카지노에 카펫과 테이블, 의자 등 가연성 물질이 많아 피해가 컸던 것으로 추정된다. 부상자는 54명으로 잠정 집계됐다. 현지 경찰은 “총상을 입은 시신은 없고, 모두 화재로 인한 연기 때문에 질식사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사망자 중에는 40대 중후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1명도 포함됐다. 이 한국인은 리조트에서 대피해 휴식을 취하다 심장마비로 숨진 것으로 추정된다. 다른 한국인 5명은 연기를 흡입하거나 대피 과정에서 경상을 입었지만 상태는 안정적인 것으로 전해졌다. 외교부는 숨진 카지노 고객 중 한국인이 더 있을 수 있다고 보고 신원을 계속 확인 중이다.

테러 감시단체 시테(SITE)는 IS가 “외로운 늑대 전사가 이번 공격을 단행했다”고 배후를 자처했다고 밝혔다. 필리핀 정부가 남부 민다나오섬의 마라위시에서 IS 추종 반군과 교전을 벌이는 상황이어서 IS의 보복 테러일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이에 대해 로널드 델라로사 필리핀 경찰청장은 “테러로 볼 단서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확신하기에는 이르지만 IS의 테러는 아니다. IS의 소행이라면 사람들을 총으로 쏘고, 폭탄을 터뜨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카지노 CCTV 확인 결과, 범인이 고객들에게 총격을 가하지 않고 인질도 잡지 않은 데다 카지노 칩을 훔친 점 등을 보면 단순 강도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범인은 방화 후 물품 창고에서 1억1300만 페소(약 25억5000만원)어치의 카지노 칩을 챙겨 달아났으나 얼마 후 이 호텔 5층 방에서 침대에 누워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IS를 추종하는 반군들이 필리핀 남부에서 납치와 테러를 일삼고 있어 이번 사건이 새로운 테러의 뇌관으로 작용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지난달 23일 민다나오섬 전체에 계엄령이 선포된 뒤 필리핀 정부군과 ‘마우테’ 반군의 교전 과정에서 170여명이 사망했다. 반군 사망자 중 외국인 8명도 포함돼 있어 마우테가 해외 IS 단체의 지원을 받아 세력을 키우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따라서 IS가 이번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으로 홍보하면서 반군 세력을 규합하는 계기로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RWM은 카지노를 비롯해 각종 유흥, 쇼핑, 호텔 시설을 한꺼번에 이용할 수 있는 복합 리조트로 4개의 고급 호텔과 고급 브랜드 매장, 컨벤션센터 등을 갖추고 있다. 한국인 관광객도 많이 찾는 곳이다.

글=노석철 권지혜 기자 schroh@kmib.co.kr, 그래픽=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