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기문 “한·미 정상회담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입력 2017-06-03 05:02
문재인 대통령이 2일 청와대에서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을 대선 이후 처음 만나 악수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오찬을 함께하며 외교 문제에 대한 조언을 부탁했고, 반 전 사무총장은 "기꺼이 응하겠다"고 화답했다. 청와대 제공

문재인 대통령이 2일 반기문 전 유엔 사무총장과 만나 “국내 정치는 소통을 하며 풀어 가면 되지만 외교 문제는 걱정이고 당면 과제이니 경험을 빌려주셨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반 전 총장은 “기꺼이 응하겠다”고 말했다. 반 전 총장은 문재인정부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지는 않을 예정이지만 대통령의 외교 자문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백악실에서 반 전 총장과 오찬을 갖고 “앞으로도 새 정부 외교정책 수립과 외교 현안 해결에 많은 조언을 부탁드린다”며 이같이 말했다. 문 대통령과 반 전 총장은 예정된 70분을 훌쩍 넘겨 110분 동안 사드 문제 등 당면한 외교 현안에 대해 긴밀히 의견을 나눴다. 문 전 대통령이 취임 이후 반 전 총장을 만난 것은 처음이다.

반 전 총장은 “언제든 대통령과 새 정부의 자문 요청에 응하겠다”고 화답하며 한·미 정상회담 및 대북 접근법 등에 대해 조언했다. 반 전 총장은 “(한·미 정상회담은) 정중하면서도 당당하게 임하는 것이 좋다”며 “한·미동맹이 초석이란 인식을 가져야 한다. 북핵에 대한 한·미 간 공통분모를 잘 활용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핵 문제를 포괄적·단계적·근원적으로 풀어가겠다는 문 대통령의 철학은 미국과 같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반 전 총장은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초기에는 미국과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북한에 원칙적인 자세를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며 “새 정부 출범 이후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성명 내용을 보니 매우 적절한 수준이어서 잘하셨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대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일도 중요하다”며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접근이나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활용하는 등 비교적 이견이 적은 비정치적 방법을 활용하는 것이 좋다고 본다”고 조언했다.

반 전 총장은 또 “외교는 상대방이 있어 어려움이 많이 따르는데 밸런스를 잘 맞추는 게 중요하다”며 “국가 간 현안은 현안대로 풀고 또 다른 부분은 함께 풀어가는 것이 국가가 할 일”이라고 조언했다. 이어 “주요 해외 언론과의 인터뷰를 잘 활용해 문 대통령 생각을 세계에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고 했다.

한때 보수 진영의 유력 대선 주자로 거론되며 문 대통령과 경쟁했던 반 전 총장은 대선 불출마 선언 후 지난 4월 미국으로 출국해 하버드대 초빙교수로 강의해 왔다. 그는 이날 회동을 위해 전날 일시 귀국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사드 문제에 대한 조언 등 한·미 정상회담에 관한 대화가 있었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어 “반 전 총장은 전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국민으로서 자문에 응하셨고 앞으로도 그럴 계획”이라며 “대통령이 반 전 총장에게 특별한 직책은 제안하지 않았다”고 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