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파리기후변화협정 탈퇴를 선언하면서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위한 미국의 리더십을 포기했다. 그러나 협정 규정상 2019년 11월까지 탈퇴 통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장 탈퇴 효력이 발생하는 것은 아니다. 협정 탈퇴 절차를 모두 마치려면 4년 가까이 걸릴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비구속적인 조항부터 이행을 중단하겠다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2020년 미 대선에서 파리협정 탈퇴 여부가 정치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미국 언론들은 예상했다.
하지만 당장 탄소배출 규모 2위인 미국의 탈퇴 선언은 온실가스를 줄여야 한다는 전 세계적인 합의에 찬물을 끼얹었다. 파리협정은 전 세계 195개국이 참가했다. 탄소배출 규모 1, 3위인 중국과 인도를 비롯해 전 세계 대부분 나라가 이행을 약속했다. 심지어 북한도 이 협정에 참여했다. 협정에 서명하지 않은 나라는 시리아와 니카라과 2개국뿐이다. 시리아는 국제사회의 제재 대상이어서 참여를 못했고, 니카라과는 파리협정의 온실가스 감축목표와 이행방식이 너무 약하다며 서명을 거부했다. 온실가스 감축의 필요성에 공감하지 않은 나라가 사실상 하나도 없었다. 비준을 했다가 탈퇴를 선언한 나라는 미국이 유일하다.
파리협정의 모든 가입국은 온실가스 감축 계획안을 제출하고 5년마다 탄소감축 약속을 잘 지켰는지 점검받고 더 상향된 목표를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각국이 스스로 정한 감축목표 자체는 구속력이 없어 이를 지키지 않아도 직접적인 불이익은 없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의 탈퇴는 파리협정의 실효성에 타격을 주게 된다. 중국과 인도는 미국이 탈퇴하더라도 파리협정을 이행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인도네시아와 필리핀 등 개도국들은 미국의 지원이 중단될 경우 온실가스 감축 노력을 포기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이 미국의 일자리를 앗아간다고 주장했지만 협정 탈퇴로 인한 후폭풍이 오히려 미국 내 일자리와 실물경제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반론도 있다. 파리협정을 탈퇴하면 타격을 받게 되는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산업 종사자가 협정 탈퇴로 혜택이 돌아가는 석탄산업 종사자보다 훨씬 많다. 미 에너지부에 따르면 미국의 태양광발전산업과 풍력발전산업 종사자는 각각 37만4000명, 10만2000명이다. 반면 석탄산업 종사자는 8만6000명이다.
칼 호스커 세계자원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파리협정을 탈퇴한다고 하더라도 석탄산업 일자리는 되살아나지 않을 것”이라며 “추세를 늦출 수는 있어도 되돌릴 수는 없다”고 진단했다.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로 미 기업들의 제조비용이 낮아지면 무역 상대국들이 미국산 제품에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무역전쟁이 촉발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이 때문에 애플과 페이스북, 구글, 모건스탠리, 마이크로소프트 등 미국 주요 25개 기업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공개서한을 보내고 “파리협정을 탈퇴하면 우리가 보복당할 수 있다”며 탈퇴를 만류했었다.
재계 주요 인사들도 탈퇴선언을 비난했다. 전기차 업체인 테슬라의 최고경영자(CEO) 일론 머스크는 “기후변화는 현실이다. 파리협정을 탈퇴하는 건 미국이나 세계에 좋지 않다”고 비판한 뒤 대통령자문단에서 탈퇴했다. 제프리 이멜트 GE 회장과 로이드 블랭크파인 골드만삭스 회장 등도 실망감을 표출했다.
워싱턴=전석운 특파원 swch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美 파리기후협정 탈퇴] 국제적 리더십 포기… 전 세계 무역전쟁 촉발 가능성
입력 2017-06-03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