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파리기후협정 탈퇴] “美 빠진 국제 리더 자리, 中이 꿰찰 것”

입력 2017-06-03 05:03

미국이 파리기후변화협정을 탈퇴하면서 글로벌 리더십의 이동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제 외교 전문가들은 이번 탈퇴 결정이 미국의 국제적 위상을 심각히 훼손하면서 주요 2개국(G2)인 중국을 새로운 1인자로 만들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1일(현지시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국의 파리협정 탈퇴는 협정에 가입한 200개 가까운 나라를 분노케 할 것”이라며 “중국과 유럽이 미국을 대신해 파리협정을 주도해 나갈 것”이라고 보도했다.

브루스 존스 브루킹스연구소 외교정책국장은 WP에 파리협정 탈퇴는 “이상한 계산”이라면서 “(협정을) 떠나는 것으로부터는 아무것도 얻지 못하고 잃는 것은 많다”고 지적했다. 존스 국장은 이어 “(탈퇴 결정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테러 연합을 결성하거나 정책 문제를 놓고 서구 국가들과 연대하는 일을 심각하게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샌디에이고 캘리포니아대학 국제법·규제 연구소의 데이비드 빅터 소장도 “앞으로 다른 나라들이 우리(미국)와 엮이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의 협정 탈퇴로 생긴 공백을 (중국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이 채워 나가게 돼 향후 미국 자체의 국익을 추구하는 것조차 어려워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미국의 외교 정책에 관여했던 이들 중 상당수는 파리협정 탈퇴가 미국의 영향력과 신뢰를 크게 훼손할 것으로 걱정하고 있다. 정치 자문업체 유라시아 그룹의 클리프 쿱찬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은 파리협정 탈퇴에 앞서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에 의심을 품더니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무력화했다”면서 “그가 미국 주도의 국제 질서를 종식시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WP는 중국이 미국의 리더십 공백을 메워나갈 것이라는 관측에도 무게를 실었다. 2차대전 이후 미국이 국제 사회의 주도권을 쥘 수 있었던 배경엔 기존 주도국들이 전쟁 후유증을 겪었기 때문이었다고 분석한 WP는 “당시 미국이 떠밀리다시피 세계의 리더가 된 반면, 중국은 서서히 힘을 키워 나가며 스스로 세계의 리더에 한 발짝씩 다가서는 중”이라고 평가했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가 미국 우선주의를 명분으로 계속해서 집안으로만 파고드는 사이 중국은 세계에서 미국의 빈자리를 꿰차겠다는 입장을 계속 천명해 왔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도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미국을 대신해 세계화의 수호자가 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글=구성찬 기자 ichthus@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