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기를 앞세운 스무 살의 도전은 아름답다. ‘다크호스’ 베네수엘라와 잠비아의 스무 살 청년들의 도전은 더욱 아름답다. 2017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에서 사상 처음으로 8강에 올라 경제 위기와 정치 혼란으로 신음하는 자국민들에게 희망을 안기고 있기 때문이다.
야구의 나라로 알려진 베네수엘라는 이번 대회 강력한 우승 후보로 떠올랐다. 멕시코, 독일, 바누아투와 함께 B조에 묶였던 베네수엘라는 조별리그 3경기에서 10득점 무실점으로 전승을 거두고 16강에 올랐다. 지난달 30일 치른 일본과의 16강전에선 연장 접전 끝에 1대 0으로 이겼다. 4일 치르는 8강전 상대는 미국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원유 매장량 1위의 자원 부국이다. 하지만 국제 유가 폭락으로 최악의 경제 위기에 처해 있다. 달러 부족 사태로 자국 통화를 거의 64%나 절하했다. 베네수엘라의 GDP(국내총생산)는 지난해 18% 감소했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과 식량난으로 약탈이 자행되고 있다. 반정부 시위는 내전으로 번질 조짐마저 보인다. 생활고를 견디다 못해 브라질로 건너간 난민은 3만여 명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삶의 희망을 잃은 베네수엘라 국민들은 머나먼 한국에서 선전하고 있는 스무 살 젊은이들을 보며 위안을 얻고 있다. 두다멜 감독은 조별리그를 마친 뒤 “우리 선수들이 베네수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하길 바란다. 나라를 자랑스럽게 해 주길 바란다”고 선수들에게 애국심을 호소했다.
‘아프리카 복병’ 잠비아는 C조 조별리그에서 2승1패로 1위에 올라 16강에 합류했다. 잠비아가 지난달 31일 독일과의 16강전에서 펼친 승부는 짜릿했다. 전반 37분 선제골을 내준 잠비아는 후반 5분과 23분, 41분 잇따라 3골을 뽑아내며 쉽게 이기는 듯했다. 하지만 후반 44분과 추가시간에 내리 2골을 허용하며 연장전에 접어들었다. 결국 잠비아는 연장전에서 셰미 마옘베의 결승골을 앞세워 극적인 승리를 거뒀다.
잠비아는 아프리카에서 민주주의가 가장 성공적으로 정착된 국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하지만 최근 정치적 혼란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지난해 대선후보로 나섰던 야당 국가개발연합당(UPND)의 하카인데 히칠레마 대표가 에드가 룽구 대통령의 행차를 막았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기소돼 국론이 분열된 것이다. 사업가 출신인 히칠레마는 지난해 8월 치러진 잠비아 대선에서 2.68%p 차이로 룽구 대통령에 석패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사건은 경제 위기로 어수선한 잠비아 상황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고 전했다. 세계 4위 구리 생산국인 잠비아는 최근 구리 가격 폭락으로 큰 타격을 받았다. 여기에 2012년부터 2015년까지 약 28억 달러(3조1400억원)를 차입해 막대한 정부 부채도 지고 있는 상태다. 가뭄과 높은 물가 등으로 신음하고 있는 잠비아 국민들도 U-20 대표팀의 8강 진출에 모처럼 환호성을 올리고 있다.
잠비아 U-20 대표팀은 오는 5일 이탈리아와 8강전을 치른다. ‘빗장수비’를 자랑하는 이탈리아는 지난 1일 우승후보 프랑스를 2대 1로 꺾고 8강에 올랐다. 베네수엘라와 잠비아가 8강전에서도 승리를 거두고 자국민들에게 다시 한 번 희망의 메시지를 전할 수 있을까.
글=김태현 기자 taehyun@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U-20 월드컵] 신음하는 조국 위해… 20세 청년들 희망의 슛
입력 2017-06-03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