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장종현] 어머니를 그리며

입력 2017-06-02 17:33

세월이 빠르다. 내일 모레면 내 나이 일흔이 되니 말이다. 나에게도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던 어린 시절이 있었고, 꿈을 찾아 방황하던 청년 시절도 있었다. 스물아홉 젊은 나이에 학교를 세우고 40년 만에 어엿한 대학으로 성장하기까지 참으로 많은 일이 있었다.

힘들고 어려운 시절을 지나오면서도 흔들림 없이 중심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내 마음 속에 어머니의 가르침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머니는 충청도 시골 아낙이었지만 지혜롭고 따뜻한 분이셨다. 동네 어려운 사람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셨고, 집으로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는 법이 없으셨다. 배고픈 걸인이 찾아오면 식은 밥을 내어주는 법 없이 꼭 따뜻한 새 밥을 지어 대접하곤 하셨다. 어머니의 무한한 사랑은 내가 자라는 데 자양분이 되었고, 나 역시 섬기고 대접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이 되었다.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신 말씀 중에 기억나는 몇 가지가 있다. 수십 년이 지나도 그 말씀에는 틀린 구석이 없다. “장마 때는 흙탕물이 일어 시냇물 속이 보이지 않지만 비가 그치고 사나흘이 지나면 물이 맑아지고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단다.” 이 말씀은 당장은 거짓말로 속일 수 있지만 언젠가는 다 드러나기에 정직하게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이셨다. 살아오면서 거짓말 한마디면 위기를 벗어날 것 같은 순간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럴 때면 어머니의 가르침을 기억하면서 담담히 위기와 대면했다. 거짓으로 순간을 모면하느니 정직하게 매를 맞는 것이 나았다. 놀랍게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늘의 뜻에 맡기면 마치 내 속을 훤히 들여다보듯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해결됐다.

공동체를 이끌어가다 보면 순간의 위기에서 벗어나려고 거짓말을 하는 이들을 종종 보게 된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노력하면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는데 고비를 넘기지 못하고 “불가능하다”고 여겨서 사실을 숨기는 것이다. 그 순간의 위기는 모면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당장은 흙탕물이 가득해도 시간이 흐르면 다시 맑은 물이 흐르듯 모든 사실은 드러나게 된다.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얼마나 정직하게 최선을 다했는가로 판단하신다.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란다면 그것은 게으름이요, 불순종이다.

결정적인 순간에 모든 것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결단도 어머니께 물려받은 유산 중 하나다. 어린 시절 친구들과 땅따먹기 놀이를 하면 괜한 승부욕이 생겼다. 더 많은 땅을 차지하려고 기를 쓰다가 놀이에서 지면 속상한 마음으로 집에 들어갔다. 그때 어머니는 어린 나를 안아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시작할 때는 다 네 땅이 될 것 같았지? 다시 생각해보아라. 그건 네 것도 아니고 친구의 것도 아니지. 그냥 마당이고 놀이인 것이다. 세상을 살아갈 때도 마찬가지야. 모든 것이 네 것이 될 것 같지만 결국 네 것은 하나도 없단다. 우리는 세상에 나와 행복하게 놀다 가면 그만이야. 욕심 부리지 말고 사는 동안 부끄럽지 않게 살거라.”

시간이 오래 흘러도 어머니의 음성은 내 귓가에 생생하다. 어떤 어려움이 와도 사는 동안 부끄럽지 않게 최선을 다하라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과 동일하다.

시련은 지나간다. 인내는 온전함을 이룬다. 어머니의 말씀처럼 정직하고 부끄럽지 않게 살다보니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었다. 오늘따라 어머니가 더욱 그립다.

장종현 백석대학교 설립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