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20 월드컵] 바누아투 청년 칼로의 ‘코리안 드림’

입력 2017-06-02 05:03
바누아투 20세 이하(U-20) 축구 대표팀의 주장 봉 칼로가 지난달 26일 인천국제공항에서 고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이덕진 선교사(앞줄 맨 오른쪽) 부부가 지난 4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도중 바누아투 대표팀 선수들과 함께 2017 국제축구연맹(FIFA) U-20 월드컵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모습. 이덕진 선교사 제공

태어나서 처음 밟아본 한국 땅. 국제축구연맹(FIFA) 20세 이하(U-20) 월드컵 B조에 속한 바누아투의 스무 살 주장은 대전과 제주에서 고작 1주일간 경기를 치렀다. 3전 전패의 성적을 안고 고국행 비행기에 올랐지만 그의 표정은 마치 우승이라도 한 것 처럼 해맑았다. 집에 돌아가면 ‘축구 영웅이 돌아왔다’며 반겨줄 가족들이 생각났을 터다. 그리고 프로축구 선수가 되겠다는 꿈은 더욱 선명해졌다. FIFA 랭킹 179위의 바누아투 축구대표팀을 이끈 봉 칼로(20)는 한국에서 희망을 품고 돌아갔다.

오세아니아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에서 스포츠 선교활동을 펼쳐온 이덕진 선교사를 1일 만나 바누아투 최초의 프로선수를 꿈꾸는 봉 칼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이 선교사는 지난 4월부터 월드컵 진출을 확정한 바누아투 대표팀과 동행을 시작했다. 뉴질랜드 전지훈련장에도 따라가 이들을 위해 기도했고 월드컵 기간에도 동고동락하며 선수들을 도왔다. 그는 “봉 칼로가 떠나기 전에 한국인들에게 너무 고맙고 한국프로축구 K리그에서 꼭 뛰고 싶다고 했다”고 전했다.

봉 칼로는 바누아투 타나섬 출신이다. ‘야수르’라 불리는 활화산 아래 작은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 13살 때 브라질 축구스타였던 호나우두의 플레이를 보고 공을 차기 시작했다. 봉 칼로는 현재 바누아투축구협회(VFF)가 운영하는 내셔널 슈퍼리그의 타페아 팀 소속이다.

봉 칼로는 별도의 보수를 받지 않는다. 프로선수가 아니기 때문이다. 8개 마을의 이름을 딴 축구팀들이 모인 VFF 내셔널 슈퍼리그는 매주 토요일 2경기씩 열린다. 훈련 환경은 열악하다. 덥고 습한 날씨 탓에 한낮에는 훈련할 엄두가 안 난다. 이른 아침과 해가 지기 전에 잠깐 모여 전술훈련을 하는 게 전부다.

그럼에도 축구는 바누아투 최고의 인기 스포츠다. 봉 칼로는 자신의 플레이를 보고 열광하는 팬들을 보며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되겠다고 꿈을 키워왔다. 그리고 이번 U-20 월드컵에서는 총 3골을 터뜨리며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지난달 20일 멕시코전에서 처음 월드컵 무대를 밟은 바누아투의 역사적인 첫 골을 책임졌다. 28일 독일과의 조별리그 최종전에선 0-3으로 뒤진 상황에서 2골을 몰아넣으며 대이변을 쓸 뻔했다.

봉 칼로는 한국을 떠나기 직전 인천국제공항에서 “한국처럼 축구가 활성화된 곳에서 배워보고 싶다. 해외 진출에 성공한 바누아투 선수로 첫 걸음을 떼고 싶다”고 소망했다. 이어 “키가 170㎝로 작지만 리오넬 메시처럼 빠른 드리블을 할 수 있고, 골 결정력이 좋다”며 미소를 지어보였다.

봉 칼로가 유독 한국인들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바누아투 선수들은 대회 소집기간 동안 재정적 어려움을 많이 겪었다. 지난 4월 뉴질랜드 전지훈련 때는 면에 간단한 소스만 뿌린 파스타를 먹으면서 훈련했다.

이러한 사정을 알게 된 한국 교민들이 팔을 걷고 나섰다. 바누아투에는 한국인 20가구가 있다. 떡집과 건강식품점, 마트 등을 운영하는 한국 교민들이 바누아투 대표팀에 떡과 빵, 우유와 같은 간식들을 수시로 제공했다. 한창 먹을 것을 찾는 20세 이하 청소년들에겐 더할 나위없는 도움이었다.

월드컵 조별리그 경기 때는 바누아투를 위한 응원전이 펼쳐졌다. 바누아투에 거주하는 한국 교민들의 친척들, 바누아투에 잠시 정박했던 원양어선원들이 경기장을 찾아왔다.

봉 칼로는 “한국 분들이 열심히 응원해주셔서 너무 고마웠다. 특히 ‘대∼한민국’을 ‘바∼누아투’로 바꿔 외쳐준 응원이 가장 인상 깊었다”고 했다.

이 선교사는 “봉 칼로는 겸손하고 밝은 친구다. 친화력이 있어 어느 팀이라도 잘 녹아들 것”이라며 “실력도 있는 만큼 축구 관계자들이 한국 진출을 희망하는 봉 칼로를 꼭 기억해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박구인 기자 capta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