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퇴사가 꿈이 된 신입사원들 ② 사표 부르는 조직문화 백태 ③ 사표 던진 이후의 삶 ④ 부장들의 항변 ⑤ 사실 나도 ‘꼰대’다(끝)
[취재대행소 왱] 하필 오후 5시45분이었다. 그 생각을 왜 그 시간에 했는지 설명할 길은 없는데, 기사가 되겠다 싶었다. 30일 오후 청와대는 갑자기 대통령 업무지시를 발표했다. ‘사드 몰래 반입 파문’이란 1면 기사가 만들어졌다. ‘진상조사’ 지시 내용을 훑어보니 검찰의 돈봉투 만찬에 ‘감찰조사’를 지시했던 상황과 흡사했다. 두 사안의 유사성에 맞춰 기사를 만들고 싶은데…. “이형민!” 내가 부른 건 우리 부 막내 기자였다.
“자, 들어봐. 이건 국방부에서 보고를 제대로 안 했다고 지적한 거야. 건수를 잡은 거지. 그걸 까발렸어… (한참 주절주절 떠든 뒤) 알겠지? 이걸로 기사 하나 써봐.”
이렇게 말해 놓고 나는 사족을 붙였다. “급하게 쓸 건 없어. 내일 아침 출고하자. 자료도 찾고 취재 좀 해서.” 막내가 자리로 돌아간 뒤 시계를 보니 5시50분이었다. “자, 야근자들이랑 시간 되는 사람, 밥 먹으러 갑시다. 들어갈 사람은 들어가시고.” 이형민 기자는 야근자가 아니었다. 퇴근을 15분 남겨둔 직원에게 일을 던져준 나는 “퇴근합시다” 하면서 ‘착한 상사’ 흉내를 내고 있었다.
모르고 그랬다는 말로 들릴 수 있는데, 사실 나는 막내가 야근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막내를 부른 이유는 세 가지쯤 된다. 우선 만만하다. 내 눈에 비친 막내 기자들은 다들 마구 시켜도 될 것 같은 인상을 가졌다. 만만해 보이니 그들을 부르는 건 쉽게 습관이 된다. 막내에게 일을 가르친다는 명분은 이런 습관을 합리화해주고 있다.
나는 국민일보가 연재한 ‘대한민국 신입사원 리포트’의 첫 번째 독자였다. “이형민!”을 외치기 직전에도 신입사원들의 퇴사 사연이 담긴 기사를 데스킹해 넘겼다. 퇴근 직전에 일을 시키면서 다음 날 아침으로 마감을 못 박은 나의 ‘치밀함’은 기사에 등장했던 ‘퇴사 유발자’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았던 듯하다.
이튿날 출고한 신입사원 리포트 4회에는 표가 첨부됐다. 무분별한 상사 유형 10가지를 정리한 거였는데 나는 몇 개나 해당하나 세어가며 봤다. ‘상대의 시간과 비용을 고려하지 않는 상사’가 하나의 유형으로 떡 하니 적혀 있고, 그런 상사가 자주 하는 말은 “내일 아침까지 해줘”라고 돼 있었다.
이 연재는 참 괜찮은 기획물이라고 생각한다. 총 5회 중 한 회를 ‘부장들의 항변’에 할애했다(결코 그러라고 시킨 적은 없다). 여러 기업 부장들의 솔직한 발언이 담겼다. “낸들 그러고 싶겠나” “우리도 회사생활 더럽고 치사하다” “인생은 원래 각박한 것 아닌가”….
신입사원이 납득 못할 조직문화에 갈등하듯, 그런 조직에 젊음을 바쳤던 부장들도 새로운 세대와 문화충격을 겪으며 갈등하고 있었다. 한데 붙어 있지만 서로 다른 방향을 보는 동전의 양면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갈등을 치유할 때 필요한 건 어쩌면 ‘이해’보다 ‘지혜’일지 모른다. 몇 달 전 어느 글에서 그 지혜를 읽은 기억이 있다.
“회식 때 괜히 술잔 주며 ‘우리가 남이가’ 하지 마라. 남이다. 존중해라. 밥 먹을 때 소화 안 되게 ‘하고 싶은 말 자유롭게 해봐’ 하지 마라. 자유로운 관계 아닌 거 알지 않나. 상사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으라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부터 찰떡같이 말하면 될 것을, 이 무슨 개떡 같은 소리란 말인가… (문유석 판사 ‘전국의 부장님들께 감히 드리는 글’ 중에서).”
글=태원준 온라인뉴스부장 wjtae@kmib.co.kr, 일러스트=전진이 기자
[대한민국 신입사원 리포트] 국민일보 부장의 반성문… “퇴근 15분 전 막내 기자 불러 기사 하나 써봐”
입력 2017-06-02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