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유학 시절 동네 카페나 공원에 있다 보면 자연스럽게 프랑스인들과 대화를 하곤 했다. 옆자리에 있던 백발의 프랑스 할머니가 말을 건넨다.
“중국에서 왔어? 프랑스 사람이랑 결혼해서 여기 살려고?”
한국이라면 동남아시아계 여성에게 적용해도 이상하지 않은 풍경이다. ‘차이’란 시선에다 배제와 편견을 더하면 ‘차별’이 된다. 세계적인 고민거리가 된 외국인 난민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난민에 대한 거부감의 내면에는 이방인에게 일자리와 주거지를 빼앗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과 테러·폭력 가능성에 대한 공포가 내재돼 있다.
최근 입소문을 타고 괜찮은 흥행을 거두고 있는 영화 ‘겟 아웃’에서 백인 여자친구의 아버지는 흑인 남자친구 크리스에게 버락 오바마가 대통령 선거에 다시 나온다 해도 찍겠다고 말한다. 최초의 흑인 대통령을 탄생시킨 미국은 인종차별이 사라졌을까.
‘겟 아웃’은 공포영화라는 장르가 지닌 관습을 이용해 이 시대의 인종차별과 그에 대한 불안감을 다룬다. 공포영화는 자주 이방인이나 낯선 존재에 대한 대중의 불안심리를 이용해 서사를 구축한다. 크리스에게 이유 없이 신분증을 요구하는 경찰처럼 ‘겟 아웃’은 교묘해지고 일상화된 현대적 인종차별의 풍경을 곳곳에 배치했다. 그런 점에서 과거 노예제도와 같은 미국의 인종차별을 다룬 역사영화와 구별된다.
1960년대 미 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한 흑인여성들의 이야기를 감동적으로 그린 ‘히든 피겨스’는 인종차별 문제를 과거의 일로 기억하려는 듯한 유쾌하고 산뜻한 영화였다. 하지만 ‘겟 아웃’은 트럼프시대의 인종배제 정책에 대한 보이지 않는 불안을 건드린다.
이 영화가 거두는 정서적 효과도 매우 독특하다. 무서우면서 웃기고, 낯설면서 친숙한 양면적 정서가 있다. 백인 여자친구 부모를 방문한 흑인 크리스는 하인으로 일하는 두 흑인을 만난다. 그들을 마주하는 순간 익숙하면서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그들은 가까우면서 먼 존재다. 흑인으로서 그들과 동질감을 느끼는 동시에 관계의 미묘한 이질감은 영화가 만들어내는 정서적 파장의 핵심이다.
“주위에 백인만 있으면 불안해지죠.” 크리스는 어색한 흑인 하녀에게 공감을 이끌어내려 말을 건넨다. 갑자기 그녀의 눈에서 알 수 없는 눈물이 흐른다. 그녀의 안면근육은 공감을 거부한다. 하녀의 심리적 자아는 본능적으로 반응하지만, 육체를 지배하는 다른 자아는 그 감정을 거부한다. 이 영화가 놀랍도록 소름끼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이중분열의 형상화. 지성을 조정하는 자아와 빼앗긴 육체에 젖은 자아가 충돌하는 것이다. 흑인감독 조던 필레는 현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산다는 것의 의미를 자아분열의 모습으로 제시하고 “거기서 나오라(겟 아웃)”고 명령한다.
내면 깊숙한 곳의 차이에 대한 불안을 인간의 노력만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다름과 차이가 더 이상 불안과 갈등을 초래하지 않는 평화의 나라를 성경은 이렇게 묘사한다.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해 됨도 상함도 없을 것이니…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임이니라.”(사 11:6∼9)
그 나라는 경쟁과 양육강식, 우생학 같은 논리가 더 이상 우리를 두려움에 빠트리지 못할 때, 진리와 함께 찾아올 것이다.
임세은 <영화평론가>
[임세은의 씨네-레마] 영혼을 잠식하는 차이의 불안
입력 2017-06-03 00: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