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블시론-채수일] 강원용, Homo Dialogus

입력 2017-06-01 18:11

올해는 여해 강원용(1917년 7월 3일∼2006년 8월 17일) 목사님이 태어난 지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저는 한마디로 강 목사님의 삶을 요약하라면 ‘대화하는 인간(Homo Dialogus)’이라고 하겠습니다.

제가 그분을 처음 뵌 것은 신학교 신입생이던 1970년 4월 부활 주일 아침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이틀 전 수학여행을 가던 중학생들이 기차 건널목에서 열차와 버스가 충돌하는 바람에 모두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부활절 아침 신문들은 빈 교실 책상 위에 찢겨진 모자와 교복, 꽃 한 송이씩이 놓여 있는 사진을 실었습니다.

강 목사님은 설교 시간에 “도대체 누가 이 어린 생명들을 죽였는가? 건널목에 안전장치를 하지 않은 국가의 책임인가, 아니면 건널목을 무시한 운전기사인가?” 절규하면서 숨진 생명들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우리 모두의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안전을 위한 법적 제도의 정립과 실질적인 장치를 하지 않은 기성세대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 차원에서만 이해했던 저에게 그 분은 신앙의 공공성과 사회 구조적 문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무한책임의식을 일깨운 분이었습니다.

그 후 저는 강 목사님이 에큐메니컬 운동, 교회일치운동, 한국교회 개혁, 예배 갱신과 문화운동, 이웃 종교와의 대화, 크리스천 아카데미 설립과 중간집단교육, 대화모임을 통한 양극화 극복, ‘대화’지 출간과 출판운동, 평화포럼 등 한국사회와 교회 안에서 감히 누구도 범접하기 어려운 큰일을 하시는 것을 볼 수 있는 행운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오랜 독일 생활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크리스천 아카데미 전·현직 직원들이 강 목사님을 모시고 자리를 함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제가 ‘한국교회 3대 미스터리’를 이야기했습니다. 첫 번째 미스터리는 전 서울여대 여성 총장님이 평생 독신으로 사셨는데 ‘행복한 부부생활’이라는 책을 낸 것. 두 번째 미스터리는 전 감리교신학대 모 학장님이 아이가 없었는데 ‘바람직한 육아법’이라는 책을 낸 것. 그리고 마지막 미스터리는 강 목사님이 ‘대화’를 하신다는 것!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폭소가 터졌습니다.

입을 열면 막을 자가 없는 달변에다가 언제나 새롭고 놀라운 통찰력으로 젊은이들도 큰 도전을 받아 말문이 막히게 할 정도로 빠르게 혼자 말씀하시는 목사님을 모두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크리스천 아카데미의 로고는 ‘장구’였습니다. ‘장구’는 ‘노루 장’ ‘개 구’로 구성되어, 한쪽 북은 노루 가죽으로, 다른 한쪽 북은 개 가죽으로 만들어서 그런 이름이 붙었다고 합니다. 북의 양면 가죽도 다르지만 양쪽 북의 지름도 다릅니다.

장구는 서로 다른 재질의 가죽과 크기가 다른 북이 엮여 있는 타악기이고, 바로 그 다름이 아름다운 소리를 만들어내는 것이지요. 다르기 때문에 화음을 이루는 역설이야말로 대화라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입장이 같은 사람끼리는 대화가 필요 없지요. 그러나 서로 다른 시각과 입장을 가지고 첨예하게 갈등하는 사람들, 집단 사이에서는 대화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대화는 가식이나 편견이나 오해 없이 진실과 겸손과 솔직함에 근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화에 참여하는 이들은 대화 과정에서 진지함과 상호 존중의 태도를 가져야 하며 동시에 대화의 결과에 대해서도 열려 있어야 합니다. 대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은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리 자체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화는 ‘초대’이지 ‘유혹’이나 ‘강요’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돼 갈수록 강 목사님 같은 대화하는 인간이 더욱 그리워집니다.

채수일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