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 가족이 제주에 와서 함께 우도로 갔다. 청년 조카들은 스쿠터, 거의 노년 어른들은 버스 투어를 하기로 했는데 스쿠터가 출발하자마자 담벼락을 들이받고 말았다. 여자인 큰애 부상이 제법 심각했다. 정강이 살이 푹 파여 나간 것이다. 주변 살을 잡아당겨 몇 바늘 꿰매 잇는 처치를 받으면서, 그래도 녀석은 의연한 얼굴이었다. 다리가 좀 가늘어지겠네? 했더니 익살스레 눈을 부라리며 그걸 위로라고 하는 거야? 받아치기도 했다. 아니, 유머라고 하는 거야. 우도 보건소와 제주 응급실, 직장이 있는 서울 병원과 집이 있는 광주 병원을 전전하며 몇 주를 보낸 끝에 붕대는 풀었는데, 흉터가 남았다. 나중에 성형하라는 말을 조카는 또 의연하게 받아냈다. 흉터 좀 있으면 어때. 정말 쿨한 내 조카 세린이, 멋지다!
그러고 보니 나한테도 흉터가 꽤 있다. 가장 고참은 갓난아기 때 두 살 위인 오빠가 손톱으로 긁었던 자국이다. 오른쪽 입가 바로 옆에 선명했던 이 흉터는 계속 원위치에서 멀어지며 턱 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그리고 점점 희미해진다. 이거 없어지면 안 되는데. 오빠의 죄책감과 책임감을 찔러 깨울 무기인데. 가장 신참은 왼쪽 손목 안쪽 것이다. 일본 그림책 마을에 갔을 때 산책하던 강가에서 넘어지며 뭔지 뻣뻣하고 날카로운 식물 밑동에 베였는데, 응급처치를 제대로 못해 덧나는 바람에 수술 비슷한 걸 받아야 했다. 정맥 바로 옆자리라 자칫 오해를 받을 수 있다. 이것도 없어지면 섭섭하다. 오싹한 오해를 불러일으키며 천연덕스레 폼 잡는 해프닝을 한 번이라도 벌여봐야 한다.
키우던 고양이가 남긴 흉터는 애틋하다. 심지어 그리스 길고양이에게 받은 것도 그렇다. 내가 걔를 너무 도발했지, 뭐. 이 정강이 흉터는 ‘국민학교’ 때 버스에서 내리다 넘어져 생겼는데…. 무릎에 이건 뭐지? 이렇게 내 흉터는 내 인생이다. 흉터고 주름이고 없이 반질반질하게 밀어버리는 건 지나온 삶을 지워버리는 일 같지 않을까. 새삼스레 흉터를 뒤지며 추억에 잠기다가, 그만하면 잘 살았다, 나를 다독이고 싶어진다.
글=김서정(동화작가·평론가), 삽화=공희정 기자
[살며 사랑하며-김서정] 흉터가 필요해
입력 2017-06-01 18:11 수정 2017-06-08 18: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