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다닐 때 軍법사 시험 합격… 믿음의 아내 만나 복음 사도로

입력 2017-06-03 00:02
임헌준 목사(오른쪽)와 박은자 사모가 지난 1일 충남 아산 예은교회 앞에서 포즈를 취했다.
예은교회 강단 앞에 모인 임헌준 목사(맨 왼쪽)와 교인들. 교인 대부분은 불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
“하나님. 용서해 주세요. 이 땅에선 이 남자와 살겠습니다. 저는 지옥에 가도 좋습니다.”

기도는 그렇게 마무리됐다. 충남 아산 예은교회 박은자(58) 사모가 결혼하기 전 기도를 할 때였다. 펑펑 눈물을 쏟았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었지만 불교도였던 임헌준(56)이라는 남자를 너무나 사랑했기 때문이다.

“남편은 동국대 불교학과를 나와 해박한 불교지식을 갖고 있었어요. 대학 1학년 때 군종사관(군법사)후보생 선발시험에도 합격했고요. 데이트할 때 입에서 염불이 끊이지 않았는데, 한번은 염불을 못하게 했더니 잠꼬대로 염불을 하더라고요.”

박 사모는 그런 남편의 등을 밀어 신학교에 보냈다. 신학을 공부하고도 예수님이 안 믿어지면 불교활동과 염불을 하고 절에 가도 된다고 했다. 남편은 집 인근 호서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했다. 신학을 공부하고 절에 자유롭게 드나들 심산이었다.

남편이 기독교신앙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 것은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는 불교사상의 영향이 컸다. 이 말은 ‘모든 것은 마음이 만들어낸다’는 뜻이다. 기독교인들이 있지도 않은 하나님을 마음에 만들어 교회당에서 울고불고 요상한 짓을 한다는 거였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런 남편을 버리시지 않으셨다. 신학공부를 마치고 집에 오면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하신 것이다.

“내가 언제나 너와 함께 함에도 불구하고, 없다고 생각하는 너의 어리석은 마음에 가려 나를 보지 못하는 것이다.”

시편 14장 1절 “어리석은 자는 그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는도다”라는 말씀도 주셨다. 이후 남편의 믿음은 하루가 다르게 성장했다. 성경공부를 하면서 부활의 주님 앞에 완전히 무릎을 꿇었다. 2000년 3월 한국기독교장로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세상부귀 영화를 원치 않게 됐다.

2001년 11월 교회를 개척했다. 이듬해 지금의 4층 건물을 건축했다. 은행대출 이자는 임 목사의 강의 수입과 박 사모가 건물 한 층에서 피아노학원을 운영해 충당했다. 목회자 사례비도 없었지만 어려운 이웃을 돕고 복음을 전할 때면 기쁨이 충만했다.

교인 대부분은 절에 다녔던 사람들이다. 이 중 60여명이 세례를 받았다. 몇 명은 집에 있는 불상이나 불화를 스스로 치우지 못해 임 목사 부부가 대신 치워주기도 했다.

임 목사는 기독교와 불교 비교학자로 크게 쓰임 받고 있다. 불교인 전도와 교회정착을 위한 세미나를 인도한다. 기독교 관련 서적도 여러 권 출간했다. 모든 것은 순조로운 듯 보였다.

“이렇게 목회자로 사는 게 감격스럽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들이 교회에 발을 내밀 때 무척 기쁩니다.”

그런데 교회부흥 전선에 빨간불이 켜졌다. 피아노학원에서 초등학교 학생을 받은 뒤 목회가 꼬이기 시작했다. 그 학생은 몹시 거칠고 친구들을 괴롭혔다. 중학생 형과 싸워도 지지 않는 그런 아이였다.

학부모들이 몰려와 그 아이를 당장 내보내라고 요구했다.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아흔아홉 마리의 양보다 한 마리의 길 잃은 양을 더 소중히 여기는 게 성경의 가르침이기 때문이었다. 정성스레 아이를 신앙 안에서 돌봤다. 2년 뒤 아이는 몰라보게 변화됐다. 공부도 잘하고 성실한 아이가 됐다.

한번 기울어진 학원은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결국 몇 달치 은행이자가 밀려 경매가 진행됐다. 하나님께 교회를 지키게 해달라고 매달렸다. 기적적으로 입찰계약금을 마련했다. 낙찰을 받았고 절반 정도는 대출이 가능한 상태가 됐다. “며칠 전 법원에서 잔금을 납부하라는 통지를 받았습니다. 부디 불교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하는 저희 부부의 사역이 중단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산=글·사진 유영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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