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31일 딕 더빈 미국 민주당 상원 원내총무를 만나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THAAD) 배치가 지연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기존 합의를 곧이곧대로 이행하지는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사드 배치 논란은 6월 말쯤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한·미 정상회담에도 적잖은 파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미 국방 당국은 사드 배치를 올해 안에 완료하겠다는 방침을 대선 전부터 밝혀 왔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전인 지난 2월에도 한민구 국방부 장관과 제임스 매티스 미국 국방부 장관은 서울에서 회담을 갖고 이런 입장을 재확인한 바 있다. 지난 4월 26일에는 사드 장비 중 일부가 기습적으로 성주골프장에 배치되기도 했다.
한·미 당국이 대선 직전에 이런 움직임을 보인 것은 사드 배치를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도로 해석됐다. 정권교체가 이뤄지더라도 사드 배치 결정을 번복할 수 없도록 ‘알박기’를 했다는 것이다. 대선 후보 신분이었던 문 대통령도 당시 강한 유감 입장을 표시한 바 있다.
다만 문 대통령은 박근혜정부가 맺은 기존 한·미 합의를 존중하겠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섣불리 사드 배치를 철회해 한·미 관계를 파국으로 몰고 가지는 않겠다는 뜻이다. 청와대 역시 사드 배치와 관련해 ‘재배치’나 ‘재합의’라는 표현은 피하고 있다. 배치를 강행하려는 미국과 반대하는 중국 양측을 모두 배려하는 포석이다.
하지만 논란이 커질수록 사드 반대 여론이 높아질 게 분명하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사드 배치 과정 전반에 대한 고강도 조사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배치 과정에 심각한 절차적 문제가 드러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배치를 철회하라는 진보 진영의 압력에 직면할 수 있다. 한·미 간 외교적 갈등도 피할 수 없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31일 “한·미 상호방위조약을 보면 미국은 자기들이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전략 자산을 들여올 수 있다. 조약문에 한국이 이런 권리를 미국에 ‘허여(許與)한다’고 명시돼 있다”면서 “한국이 국회 비준을 거쳐 사드 배치를 결정하겠다고 하면 미국 입장에서는 ‘비준 사안이 아니다’라는 말을 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전초전은 이달 말쯤으로 전망되는 한·미 정상회담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사드를 두고 얼굴을 붉히는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을 벼르고 있어 첫 한·미 정상회담이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예상은 이미 많았다.
여기에 더해 정상회담을 실무적으로 지휘할 외교부 장관이 사실상 공석이다. 청와대는 정상회담 준비기간을 고려해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를 조기에 내정했다. 하지만 위장전입과 거짓말 논란 등 각종 의혹이 불거지면서 인사청문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진 상태다. 청문회 절차가 순조롭게 진행되더라도 실제 취임은 이달 중순에나 가능하다.
글=조성은 기자 jse130801@kmib.co.kr, 그래픽=안지나 기자
한 달 앞둔 한·미 정상회담 ‘사드 불똥’ 튀나
입력 2017-06-0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