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기자-이도경] 복종 아닌 보좌를… 국정교과서의 교훈

입력 2017-06-01 05:01

“위쪽이 워낙 강경해서….” 박근혜정부 서슬이 시퍼렇게 살아 있었던 지난해 여름, 교육부 사람들은 이렇게 국정 역사 교과서 추진 배경을 말하고 다녔다. 물론 공식적으론 청와대 개입 없이 ‘알아서’ 추진했다고 주장했다. 교육부도 남들이 믿어줄 것으로 기대하지 않고 내뱉는 허튼 소리였다.

“총리와 부총리가 그대로 계신데….” 박근혜정부가 추락하고 조기 대선이 가시화된 시점에도 교육부 사람들은 국정 교과서 정책을 접지 않고 버텼다. 국정 교과서를 추진했던 총리와 부총리가 자리 보존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교육부 스스로도 이 정책이 곧 폐기될 운명이란 걸 잘 알면서도, 학교 현장의 혼란을 뻔히 예상하고도 ‘높으신 분’ 핑계만 댔다.

교육부가 31일 국정 교과서 폐기 절차를 완료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폐지를 지시한 지 19일 만이다. 중학교 역사, 고등학교 한국사는 검정 교과서만 사용하도록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구분 재수정 고시’를 게재했다. 국정화 실무 조직인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도 해체했다. 정부세종청사에 있었던 역사교육추진단 명패도 내렸다. 국정 교과서를 홍보하려고 운영했던 ‘올바른 역사 교과서’ 홈페이지도 폐쇄했다. 폐기 절차는 신속하고 일사불란했다.

왜 이렇게 비루하게 행정을 하는가. 교육부 사람들은 이렇게 볼멘소리를 했다. “대통령은 하늘에서 뚝 떨어진 사람이 아니다. 국민이 선거로 뽑아 놓은 대표자다. 대통령에게 관료가 복종했던 게 그리 비난받을 일인가.” “영혼 없다 하지만 관료가 대통령 뜻을 거스르고 마음대로 한다면 관료 독재 아닌가.”

대통령을 잘 보필하는 게 관료의 역할이긴 하다. 그렇다고 국민은 관료에게 무조건 복종하라고 요구하진 않는다. 서슬 퍼런 권력에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용기 있게 말하는 관료에 박수를 보낸다.

문재인정부도 학교 현장에 파급력이 큰 정책을 여럿 내놨다. 수능 절대평가, 고교 내신 절대평가, 고교학점제 등 하나하나가 학생 인생뿐 아니라 국가의 백년지계에 큰 영향을 끼치는 정책들이다. 문재인정부의 대입 정책이 처음 적용될 것으로 예상되는 중학교 3학년과 고교 1학년 교실은 이미 큰 혼란을 겪고 있다. 사교육 시장도 들썩이고 있다.

복종과 보좌의 경계가 모호한가. 의외로 간단할 수 있다. 대통령이 아닌 학생과 학부모를 기준으로 삼고 행동하면 된다. 제대로 된 대통령이라면 비루한 복종보다 정당한 보좌를 원하지 않을까. 국정 교과서 폐기를 계기로 교육부의 환골탈태를 기대해본다.

이도경 사회부 기자 yid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