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정오에 찾아간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한국수자원공사 고양권관리단 축구장. 수은주가 28도까지 오를 정도로 뜨거운 태양이 작열했다. 그 열기 속에서 한 무리의 선수들이 경기를 위해 몸을 풀었다. 여느 성인 동호회 축구팀과 다를 바 없었다. 스트레칭을 하고, 패스를 주고받았다. 다만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었고, 백발을 휘날리는 선수가 많은 게 좀 달랐을 뿐이었다. 바로 70대 이상 할아버지들로 구성된 축구팀이었다. 이날 ‘고양시 70대 축구단’은 ‘인천시 70대 축구단’과 친선경기를 했다.
경기는 여느 성인 동호회 축구팀 못지않게 격렬했다. 할아버지들은 젊은이들처럼 몸을 날렸고, 골문 앞에선 몸싸움도 불사했다. 이날 두 팀은 친선경기라 전후반 구분 없이 25분씩 4세트로 경기를 했다. 그라운드에서 뒹구는 시간만 100분이다. 성인 축구 한 경기인 전후반 90분보다 10분 더 뛰는 것이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러다 탈이 날까 걱정이 됐다. 그러자 고양시 70대 축구단 사무국장인 이기영(74) 할아버지가 껄껄 웃으며 말했다. “4월 말 강원도 홍천에서 열린 제36회 대한축구협회장기 전국축구대회 황금부(70대)에서 우승할 당시 이틀 연속 경기를 뛰었다네.” 이 할아버지는 “그때 나흘 동안 7경기를 했는데 나를 포함해 3∼4명이 전 경기를 쉬지 않고 뛰었는데 끄떡없었다”고 자랑했다.
그래도 위험한 것 같은데 가족들이 만류하지 않느냐고 서만수(73) 할아버지에게 물었다. “전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오히려 며느리가 남편에게 “시아버지가 축구를 해서 너무 고맙다”고 말을 했더란다. 서 할아버지는 “축구를 해서 안 아프니 자식들이 요양병원에 보내고 면회 올 필요도 없다는 뜻”이라며 껄껄 웃었다.
할아버지들은 건강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젊은 시절부터 축구와 함께 생활했기에 다른 종목은 시시해서 하지 않는다고 했다. 송준근(74) 할아버지는 수도경비사령부 원사 출신으로 35년 동안 전투축구로 실력을 갈고 닦았다. 회장을 맡고 있는 임경규(71) 할아버지는 마포경찰서 경찰 출신이다.
1세트를 마치고 10분간 쉬는 시간. 팀의 막내인 김상수(70) 할아버지는 형님들의 물 수발을 드는 데 분주했다. 김 할아버지는 지난해까지 ‘고양시 60대 축구단’에서 뛰다 올해부터 70대 축구단으로 승급(?)했다. 김 할아버지는 “내가 제일 어리니까 물을 나르고 있는 것”이라며 “60대 팀에선 좀 뒤에서 여유롭게 했지만 여기 와선 우리가 맨 앞에서 제일 빨리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렇듯 70대 축구단 선수들은 대부분 60대 축구단에서 활동한 사람이 자연스럽게 올라온다. 물론 이전에 활동을 하지 않았더라도 뛰고 싶으면 가입만 하면 된다.
2세트가 시작됐다. 어느 순간 고양시 70대 축구단 공격수 중 가장 나이가 많은 이재완(76) 할아버지가 패스를 받아 골키퍼와 맞닥뜨렸다. 공교롭게도 상대 골키퍼는 그 팀에서 가장 연세가 많은 김중배(81) 할아버지였다. 이 할아버지가 때린 슛이 골대를 벗어났다. 김 할아버지는 노래 ‘뱀이다’로 유명한 트로트 가수 김혜연의 아버지였다. 그는 “딸이 내가 축구하는 것을 엄청 반긴다”며 “큰 대회가 있을 때는 가끔 와서 노래도 불러주고 간다”고 자랑했다. 80대에도 매주 경기에 출전하는 것에 대해 “지고 이기는 게 문제가 아니다. 같이 즐겁게 만나 운동하고 이야기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경기가 끝나자 양 팀 할아버지들의 얼굴은 땀범벅이 됐다. 그래도 모두 환한 미소를 지었다. 이영식 할아버지는 “내 나이가 칠십인데 아직 팔팔하다. 축구는 전신 운동이다. 소화 기능도 좋아진다”며 “우리가 안 아프면 건강보험이 절약돼 국가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할아버지들은 또래 노인들과 함께 운동하며 인생을 이야기하는 것에 상당한 만족감을 표시했다. 다만 정부의 지원이 부족해 못내 아쉬운 듯했다. 실제 고양시 70대 축구단 멤버들은 매달 3만원의 회비를 낸다. 1주일에 두 번 정도 경기를 하는데 목욕과 식사를 하고 나면 회비는 1주일 만에 동난다고 한다. 이에 회장과 고문 등 선수들이 십시일반으로 따로 돈을 모아 운영비에 보태고 있는 실정이다. 전국에 70대 축구단이 몇 개 있는지조차 아직 통계가 잡혀 있지 않다. 이기영 할아버지는 “전국적으로 130개 정도 있는 것 같은데 한국장수축구협회 등 전국대회를 개최하는 각종 단체에 들어가려면 입회금 등 돈을 내야 되기 때문에 가입을 망설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대한체육회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생활체육을 더 강화하고 있는 만큼 향후 좀 더 체계적인 지원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고양=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사진=김지훈 기자
공동기획 : 국민일보·대한체육회
[And 엔터스포츠] 70살 막내 물수발 받고… 백발 공격수 펄펄
입력 2017-06-02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