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 임명동의안이 31일 국회 본회의에서 진통 끝에 처리됐다. 총 188표 중 찬성 164표, 반대 20표, 기권 2표, 무효 2표였다. 임명동의안이 상정되자 자유한국당 의원들은 본회의장에서 퇴장했다. 임명동의안이 통과되고 총리 취임식까지 이뤄졌지만 청와대와 여당에 남긴 상처는 컸다. 문재인 대통령은 첫 인사부터 5대 비리 관련자 인사 배제라는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 검증 시스템은 존재 자체를 의심받을 정도다. 청와대와 여당의 정치력 부재도 드러났다. 문재인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협치 허니문 정국은 자취를 감춰버렸다.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 처리보다 더욱 어려운 과제들이 겹겹이 쌓여 있다. 오는 2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와 7일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발등의 불이다. 각종 의혹 제기로 통과 여부를 장담할 수 없다. 더구나 6월 임시국회 처리를 목표로 한 일자리 추가경정예산도 야당의 협조 없이 통과가 불가능하다.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검찰 개혁, 정부조직 개편 문제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이 뚜렷하다. 120석의 집권여당 혼자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구조다. 야당과의 협치가 필수다. 청와대와 여당이 밀어붙일 경우 정국 냉각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총리의 어깨가 그 어느 때보다 무거울 수밖에 없다. 우선 단기 과제로 인사청문회 정국 돌파를 위한 정치력이 요구된다. 헌법은 국정 2인자인 총리에게 장관에 대한 임명제청권과 해임건의권을 부여하고 있다. 과거와 같은 대독총리에 머물러 있어선 안 되는 것이다. 실질적인 권한 행사에 나서는 게 마땅하다. 그러기 위해선 적어도 장·차관 추천권 내지는 거부권을 행사하기 바란다. 새로운 인선 기준을 청와대에만 맡길 게 아니라 적극 협의하는 것도 필요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악습을 끊기 위해 내각이 정책 집행을 책임지도록 하는 구조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이 총리는 인사청문회에서 “내각이 할 일은 총리가 최종 책임자라는 각오로 업무에 임할 것”이라고 했다. 청와대가 사안마다 간섭하며 내각 위에 군림하는 구조를 없애야 한다. 청와대는 중장기 국정과제에 집중하고 일상 업무는 총리가 적극 맡는 구조가 바람직하다. 분권이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합당하다. 대통령의 눈치를 보지 않는 이 총리의 실천력이 적극 요구된다. 탄핵 정국으로 7개월 넘게 공백 상태였던 국정을 빠르게 정상화시키는 것도 주요 과제다.
문 대통령은 임명장을 주는 자리에서 헌법 상 총리 권한의 실질적 보장을 언급하면서 “일상적 국정운영은 전부 총리 책임이라는 각오로 일해달라”고 주문했다. 이 총리도 취임사에서 유능·소통·통합의 내각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4선 중진 의원 출신의 노하우를 적극 발휘할 때다.
[사설] 이낙연, 대독총리 아닌 책임총리 역할 다해야
입력 2017-05-31 17:19 수정 2017-05-31 21: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