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종보통 운전면허를 취득한 지 22년이 됐다. 월급을 받으며 직장을 다닌 지 20년이 넘었다. 올해 10월이 되면 결혼을 한 지도 17년이 된다. 하지만 아직도 소위 ‘뚜벅이’다. 무슨 얘기냐고? 말 그대로다. 태어나 지금까지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가져본 적이 없고, 현재까지는 계획도 없다. 미국의 한 대학에서 방문연구원으로 지내던 1년 동안은 자동차를 등록해 몰고 다녔으니 엄밀하게 얘기한다면 대한민국에서는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고 하는 게 맞겠다.
뚜벅이로 살아간다고 하면 대다수는 깜짝 놀라며 묻는다. “그게 가능하냐?” 대한민국에서 아이까지 낳아 기르면서 차 없이 사는 게 가능하냐고, 불편하지 않느냐고. 그 질문은 가끔 ‘다른 사람 보기에 창피하지 않냐’는 뉘앙스로 들릴 때도 있다. 하지만 대답한다. “전혀, 네버(never), 불편하지 않아”라고.
호기롭게 대답하지만 솔직히 불편할 때가 왜 없었겠나. 차가 없어 가장 불편했던 기억은 마트에 가서 생수와 같은 부피가 크고 무거운 물건을 샀을 때다.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낑낑거리며 버스에 탔을 때 민망했던 기억이 있다. 스스로 부끄럽다기보다는 함께 짐을 들고 버스에 오르는 가족의 모습을 측은하게 보는 듯한 주변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자격지심 때문에 그렇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다보니 주말에 마트에 가도 많이 사지 않는 게 습관이 됐다. 식료품은 끼니 두 번이면 다 소비할 만큼만 구입한다. 과일이나 간식거리도 그날 먹을 것 정도만 카트에 담는다. 일정 금액 이상 구입하면 무료로 배달해주는 서비스가 생기면서 생수 등 부피가 큰 물건을 구입할 때도 걱정이 없다. 뚜벅이로서 가장 불편했던 문제도 해소된 셈이다.
훌쩍 떠나고 싶을 땐 전 세계에서 손꼽을 만큼 잘 갖춰진 대한민국의 대중교통을 활용한다. 대중교통이 마뜩지 않다면 렌트를 이용한다. 렌터카 회사는 부지기수로 많아 장담하건대 차를 구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다. 대중교통으로 여행할 때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내와 혹은 아이와 머리를 맞대고 졸다가 문득 눈을 떴을 때다. 옆자리에서 내게 기대 곤하게 잠든, 사랑하는 이의 모습을 볼 때만큼 삶에서 평화롭고 편안한 순간을 찾기는 쉽지 않다. 차 안에서 핸들을 잡은 채 백미러로 잠든 가족의 모습을 보는 것과는 사뭇 다르다. 그래서인지 아이도 대중교통에서 잠든 아빠의 모습을 촬영하는 걸 즐긴다.
며칠 전 박원순 서울시장이 미세먼지가 심할 경우 독자적인 비상저감조치를 시행하겠다고 발표했다. 공영주차장 폐쇄, 공용차량 운행 중단, 시민참여형 자동차 2부제 실시, 대중교통 무료 운행 등을 약속했다. 발표 이후 국민 10명 중 8명 정도는 미세먼지를 줄이기 위해 차량 2부제를 하는 데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많은 국민들이 여론조사에서 찬성했다고 해서 당장 2부제가 안착되기는 힘들 것이다. 미세먼지가 심한 날 차 없이 거리에 나가는 걸 더 꺼리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차 없이 살아보기의 시작은 미세먼지가 심한 날보다는 미세먼지가 거의 없는, 화창한 날 하는 게 좋을 듯하다.
식당 주차장에서 내려 밥을 먹고, 고궁 주차장에서 내려 궁 안을 산책하는 것도 편리하고 좋지만 버스 정류장에서 식당을 찾아가는 길에 만나는 풍경이나 지하철역에서 고궁으로 가는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을 보는 것도 느긋하고 흥겹다. 거리를 걷다 아이와 함께 군것질하는 것만으로도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단언컨대 날씨 좋은 주말 어느 날, 차 없이 외출해 보면 차를 몰고 다닐 때 미처 느끼지 못했던 새로운 즐거움을 만나게 될 것이다.
정승훈 사회2부장 shjung@kmib.co.kr
[데스크시각-정승훈] 뚜벅이로 살아간다는 것
입력 2017-05-31 17: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