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장우영] 국회·정당·정부 협치가 답이다

입력 2017-05-31 17:22

‘제왕적’이라는 수식어는 한국 대통령제의 본질을 일갈한다. 제왕적 대통령제는 구조, 제도, 관행의 복합체이다. 그것은 삼권분립이 아니라 행정부의 절대 우위 구조에서 출발한다. 군·검·경과 정보기관 그리고 방대한 관료조직과 정부업무, 국가 예산이 이 우위를 지속시키는 자원이다. 제도적으로는 대통령의 막강한 인사권과 정책결정 권한 그리고 법안발의권이 우위 구조를 떠받친다. 이를 통해 전임 정부는 부처의 과장급 인사와 블랙리스트 지침까지 일선 관료들을 제왕적 통제하에 두었다. 이런 탓에 국정농단과 같은 퇴행적 관행이 벌어지는 것은 순식간이다. 그리고 청와대라는 또 다른 옥상옥이 행정부는 물론 삼권을 발밑에 두고 극단의 권능을 행사하는 것도 어렵지 않았다.

제왕적 대통령제의 면모를 드러내는 용어 중 하나가 당청(黨靑) 관계다. 원활한 국정 운영을 위한 집권당과 청와대의 의기투합을 시비할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두 가지 이유에서 당청 관계는 성찰을 필요로 한다. 우선 한국 정치사에서 당청 관계는 제왕적 통치를 집권당에 행사하는 도구로 쓰였다. 민주화 이후만 봐도 심각한 당청 괴리로 집권당이 분당됐던 노무현정부를 제외하고 집권당의 예속화는 더욱 심해졌다.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견제 받지 않은 권력의 파면을 여실히 목도했다. 이런 당청 관계는 행정부도 청와대의 수하기관으로 전락시켰다. 장관이 청와대 비서진의 눈치를 보고 부처 직원들도 수장보다 청와대 심기를 먼저 헤아리니 소신껏 일하는 행정부는 먼 나라 일이었다.

최근 인사 문제를 둘러싼 당청 간 불협화음은 우려를 낳기에 충분하다. 청와대가 당직자를 임의로 빼 가면 당의 공직 질서가 무너진다고 집권당 대표가 공개적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친문의원들의 반대로 인사추천위 설치도 무산됐다. 당과 혼연일체로 인사와 정책을 추진하겠다던 대통령의 공언이 무색해졌다. 반면 집권당은 인사 원칙에 부적격한 장관 후보와 청와대 비서진 인선에도 전혀 입을 떼지 못하고 있다. 과거 이명박정부의 장관인사 파동을 준엄히 꾸짖었던 민정수석의 칼럼은 오히려 정권에 부메랑을 안기고 있다. 또 홍위병을 연상케 하는 일부 광적인 지지자들은 비판자들에게 문자폭탄 세례를 아낌없이 퍼붓고 있다.

지난 대선 예비경선 당시 안희정 후보는 친문 세력이 당을 장악하면 청와대 거수기로 전락할 것이라고 직설한 바 있다. 지금은 당청이 이 뼈아픈 예지를 되새겨야 할 때다. 집권 초기의 인사파동이 국정 실패로 확대되는 과오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기 때문이다. 전 대통령은 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공신이고 박근혜정부는 문재인정부의 반면교사다. 적폐 청산의 칼날을 바깥으로만 겨눌 것이 아니라 내부의 종양을 도려내는 데도 휘둘러야 할 것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과거 야당 시절의 기준으로 부적격 인선을 철회하고 좁은 당청 관계에서 벗어나 새로운 협치의 틀을 짜야 한다.

협치의 주체는 국회·정당·정부(國黨政)다. 삼권분립의 대원칙 아래 국회와 정부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어서 집권당과 정부의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래야 의회주의와 정당정치가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예방할 수 있다. 청와대와 정무수석은 해결사가 아니라 협치를 조율하는 역할로 충분하다. 그리고 협치는 수평적이고 상호주의적으로 정립돼야 한다. 마지막으로 협치는 철저하게 정책을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소야대 형국에서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이 정책을 무기로 소통해야 국회와 야당도 국정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답은 좁은 당청 관계에 있지 않고 정치가 상생하는 국당정 협치에 있다.

장우영 대구가톨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