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액 보험금을 노리고 교통사고를 위장해 외국인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기소,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던 40대 남성을 대법원이 “다시 재판하라”고 무죄 취지 판결을 내렸다.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법관에게 확신을 주지 못한다면, 설령 피고인의 변명이 모순되거나 석연찮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한 판결이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병대 대법관)는 30일 살인과 사기 혐의로 기소된 이모(47)씨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이씨는 2014년 8월 천안 부근 경부고속도로에서 스타렉스 승합차에 아내를 태우고 가다 갓길에 세워진 화물차에 부딪혔다. 캄보디아 국적의 아내는 임신 7개월 상태였는데, 당시 이씨와 달리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은 상태였다. 조수석의 파손부위가 운전석보다 많았고 뒷바퀴가 11자로 나란히 정렬돼 있었다. 검찰은 고의 추돌과 살해 혐의로 기소했다.
이씨는 아내를 피보험자로, 자신을 수익자로 여러 건의 생명보험에 가입한 사실도 의심을 받았다. 11개 보험사의 25개 상품에 가입해 아내 사망으로 받을 보험금은 95억원이나 됐다. 수사기관은 이를 중요한 범행 동기로 판단했다. 이씨는 경찰에서부터 일관되게 졸음운전일 뿐이었다고 항변했다. 1심에서는 무죄, 2심에서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대법원은 숙고 끝에 “가능성이 있는 여러 의문을 떨쳐내고 고의사고라고 확신하기에는 더 세밀하게 심리할 부분이 많다”는 결론을 제시했다. 고의사고로 보기에는 결과의 예측·통제 가능성이 낮은 사고라는 판단이었다. 차량의 충돌 부분 및 속도를 미리 조절할 수 있다고 보기 어려우며, 우연히 대형 화물차의 정차 상황을 만나자마자 1분도 되지 않은 시간 내에 범행을 일으켰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것이었다.
앞서 2심은 사고 당시 이씨의 아내가 이씨와 동행할 예정이 아니었던 점, 이씨가 사고 직후 즉시 구조요청을 하지 않은 점, 이씨가 사고 2주 전 휴대전화를 교체했고 사고 다음날 관련 기사를 검색한 점 등도 고의사고 근거로 판단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살인 동기와 범행방법의 선택, 사고 발생 당시의 상황 등은 간접 사실일 뿐 본질적 의문을 해소할 수 없어 증명력을 부여하기 어렵다고 봤다. 사고 당시 이씨의 월수익이 900만∼1000만원에 달한 점, 보험 가입이 6년에 걸쳐 꾸준히 이뤄진 점, 보험금 가운데 54억원가량은 일시금이 아닌 정기금으로 지급받게 돼 있던 점 등도 대법원의 무죄 취지 판단에 참고됐다.
글=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삽화=전진이 기자
[사건 인사이드] ‘95억 보험금’ 교통사고 사건 무기징역서 무죄로 ‘대반전’
입력 2017-05-31 05: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