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文人 모시기’… 약인가 독인가

입력 2017-05-31 05:00
사진=국민일보DB

지방자치단체들이 지역 이미지를 높이고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해 유명 문인 모시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미흡한 고증이나 준비 부족 등으로 논란이 되는 경우도 생겨나고 있다.

30일 각 지자체 등에 따르면 문인 모시기는 후광 효과를 노린 지자체들의 단골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기념관을 짓거나 유명 문인을 지역으로 이주시키는 등의 방법으로 이뤄진다.

지자체 문인 모시기 열풍의 시작은 강원도로 알려져 있다. 원주시는 1999년 대하소설 ‘토지’의 작가 박경리 선생이 살던 집 일대에 ‘박경리문학공원’을 만들어 성공을 거뒀다. 화천군도 2006년 이외수 작가를 화천군으로 이주시키고 문학관 등을 조성해 인기를 끌었다. 이후 문인 모시기는 더욱 활발해졌다.

경기도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이주를 적극 추진해 2013년 상광교동에 그의 거처를 마련했다. 앞서 고은 시인의 고향인 전북 군산시를 비롯해 강원도 태백시, 경기도 파주시 등이 고은 시인 모시기 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2011년 논산출신 소설가 박범신 작가의 집필관을 만든 충남 논산시는 지난 27일 한국 최초 밀리언셀러 소설 ‘인간시장’을 쓴 김홍신 작가 문학관 기공식을 열었다.

일제에 저항한 민족시인 등 역사적 인물의 기념사업도 활발하다. 대구 수성구는 “관내 들안길 일대가 이상화 시인의 대표작인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며 수성못에 시비 등을 세우고 ‘상화동산’을 조성했다. 서울 종로구는 윤동주 시인과 인연이 있는 인왕산 자락에 ‘윤동주문학관’을 만들었다.

하지만 잡음도 생기고 있다. 최근 고은 시인이 머물고 있던 광교저수지 인근 일부 주민들은 “개발제한 및 상수원 보호구역 지정으로 주민들은 40년 넘게 주택 개·보수도 못하는데 고은 시인에게는 조례까지 만들어 거주지를 마련해줬다”며 수원시에 불만을 나타냈고 결국 고은 시인 퇴거 논란으로까지 번졌다.

그동안 대구 수성구 들안길로 알려져 있던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을 놓고도 원조 논란이 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최근 이 시인의 동생 이상백 전 서울대 교수가 지난 1962년 대구 남구 앞산 밑이 빼앗긴 들의 배경이라는 내용의 기고문을 한 일간지에 실은 것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남구는 이에 대한 조사를 시작했다.

수필가인 장호병 대구문인협회 회장은 “단체장 치적을 위해 급하게 사업을 추진하면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아지기 때문에 철저한 고증과 검토가 필요하다”며 “생존 문인의 경우에는 더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논산·수원=최일영 정재학 강희청 기자, 전국종합 mc10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