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싣는 순서> ① 퇴사가 꿈이 된 신입사원들 ② 사표 부르는 조직문화 백태 ③ 사표 던진 이후의 삶 ④ 부장들의 항변 ⑤ 사실 나도 ‘꼰대’다
[취재대행소 왱]많은 신입사원이 퇴사를 꿈꾸지만 월급 문제나 이직의 어려움, 가족 눈치 등을 이유로 선뜻 사표를 내지 못한다. 이런 것을 감수하고 퇴사한 이들은 당시 결정을 후회하고 있을까. 국민일보가 만난 퇴사자 중에는 꿈을 찾아 도전하는 이도 있었고, 미래를 불안해하는 청춘도 있었다. 그들이 전하는 ‘퇴사 이후의 삶’은 여러 색깔을 갖고 있다.
“퇴사하던 날, 행복했어요”
신수진(이하 가명·29·여)씨는 1년6개월간 일했던 은행에서 지난 13일 퇴사했다.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를 타고 1층에 내리자마자 인조대리석 바닥인 회사 로비를 마구 달려 나왔다고 했다. “너무 행복했어요. 시원섭섭하다는 말이 있는데, 저는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어요.”
그의 꿈은 변호사였다. 대학 시절 수차례 사법시험에 도전해 실패한 뒤 은행에 입행했다. 원하지 않는 일을 하면 할수록 못 이룬 꿈이 계속 생각났다고 했다. 근무시간에 인터넷에서 ‘변호사가 되는 법’을 검색한 적도 많다. 그러다 ‘원하지 않는 분야에서 마스터가 되긴 싫다’는 생각이 든 순간 퇴사를 결심했다.
그동안 모은 월급과 퇴직금을 털어 로스쿨에 도전해볼 생각이다. 퇴사 전 다른 기업에서 이직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꿈을 좇기 위해 거절했다. 일단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뒤 본격적으로 입시를 준비할 거라고 한다. 신씨는 “이 길의 끝에 만들어질 모습이 내가 원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된다면 퇴사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런 당부를 덧붙였다. “다만 힘들어서 그만두는 건 반대예요. 어떤 회사든 지옥 같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어디든 극복할 건 있네요”
오승우(27)씨는 영상업체에서 4개월쯤 근무하다 지난 1월 퇴사했다. 밤샘 작업을 하고 다음 날 아침 퇴근했는데 낮에 부장이 전화해 “넌 팀장이 일하고 있는데 집에서 자냐”고 야단을 했다. 연봉도 계약서에 적힌 것과 달랐다. 사표를 내니 대표가 “연봉을 조금 올려주겠다”고 했지만, 회사에 대한 신뢰는 이미 사라진 뒤였다. 그가 퇴사한 뒤 후임으로 채용된 신입사원 2명도 일주일 만에 그만뒀다고 들었다.
오씨는 “다시 그때로 돌아간대도 무조건 퇴사했을 것”이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는 “진짜 힘든 건 일이 아니라 조직문화”라며 “일도 없는데 관례로 야근이나 주말 출근을 강요하는 건 오히려 일을 방해하는 행위”라며 “그런 회사는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얼마 뒤 새로운 직장에 입사했다. 이 회사도 만족스럽지만은 않다. “저는 모션그래픽을 잘하고 그걸 하고 싶은데 옮긴 회사에선 영상 편집과 구성을 요구하더라고요. 회사에선 종합적으로 일할 사람을 원했어요. 이런 건 제가 극복해야 할 부분인 것 같아요.”
“적성에 맞는 일, 찾았어요”
윤희수(24·여)씨는 보험회사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했다. 퇴근 후 집에 도착하면 늘 자정이었다. 일요일은 ‘빨간 날’로 치지도 않았다. 주위에 하소연을 하고 싶어도 아직 취업 못한 친구들이 “복에 겨운 소리”라고 할까 봐 말을 꺼내지 못했다.
입사 전에는 영업이 자신에게 잘 맞을 거라고 생각했다. 막상 해 보니 사람을 좋아한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동료 직원에게 “이번 달은 실적이 안 좋아 80만원밖에 못 받았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안정적인 월급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게 됐다. 입사 후 1년을 꼬박 채우고 지난해 2월 퇴사했다.
윤씨는 현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교생실습을 하면서 한 학생에게 “고맙다”는 말을 들었는데, 회사에서 고객에게 듣던 “고맙다”와 무척 달랐다. 마음이 흐무러지면서 행복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가르치는 일이 재미있다. 내 몸에 맞는 일을 찾은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닌다.
직장생활을 할 때 도무지 자기 시간이 없었다는 윤씨는 퇴사 후 여유가 생긴 점도 좋다고 했다. “학원에서 강사로 일하고 과외를 3개나 하는데도 회사 다닐 때보다 내 시간이 많다. 가족과 함께 식사할 때마다 ‘이게 행복인가’ 싶다”고 말했다. 퇴사와 이직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이렇게 조언했다. “직장 이름보다 하는 일이 내게 맞는지 봐야 해요. 회사가 좋아도 부서가 맞지 않으면 행복을 찾기는 어려울 거예요.”
“옛 동료의 승진 소식에…”
김승혜(28·여)씨는 유통업체를 1년9개월 다니다 그만뒀다. 밤 11시 넘어 퇴근하는 날이 많았고, 회식이 잡히면 빠지기 힘든 분위기였다. 김씨는 “이 회사에선 나의 아름다운 미래가 도저히 그려지지 않아서 나왔다”고 했다. 사표를 낼 때 “참고 견디면 인재가 될 수 있다”고 만류했던 과장도 현재 퇴직을 준비 중이란 소식을 얼마 전 들었다.
처음엔 ‘무직’이 됐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요즘도 퇴사한 게 약간은 후회스러울 때도 있다고 했다. 친구들이 출근한 낮 시간엔 세상에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고, 거리를 돌아다니다 갖고 싶은 물건을 봐도 지갑을 열기 어려웠다. 옛 동료의 승진 소식이 들려올 때 ‘아직 그 회사에 있었다면 나도 승진했을까’를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당분간 취직하지 않겠다는 결심을 아직 굽히지 않고 있다. 전문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이다.
김씨는 퇴사를 생각하는 청년들에게 “(퇴사하려면)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그냥 힘들어서 도피하자는 생각으로 나오면 90% 이상 후회할 거예요. 저도 그랬어요. 미래를 철저히 계획하고 실행하세요, 제발.”
“제 자신을 믿게 됐어요”
박형식(29)씨는 지난해 6월 회사를 나왔다. 벤처기업에서 과로와 폭언에 시달리다 아무런 준비 없이 사표를 던졌다. 그리고 바로 호주 여행을 떠났다. 귀국하자마자 한숨부터 나왔다. ‘이제 뭐 먹고 살지….’
워킹홀리데이를 가거나 외국어 공부를 할까 생각했지만 막연했다. 다른 회사 지원도 고민해봤는데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픈 욕심이 더 컸다. 그럴 때 친구가 음식점을 차리자고 제안했다. 이 길이 맞을까 고민은 됐지만 이것도 기회라 생각하고 서울 영등포구에 일본식 선술집을 차렸다. 그는 “회사라는 공간에서 저는 하나의 부품이었는데 지금은 내가 뭔가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장사도 결코 만만하지 않았다. 해코지하는 취객도 있었고, 하루에 4시간 이상 자기도 어려웠다. ‘장사가 잘 안되면 어쩌나’ 불안감도 견뎌야 한다. 그래도 손님들이 자신의 요리를 좋아해 줄 때마다 자신감이 붙어간다고 했다. “회사에 다닐 때는 ‘이렇게 해도 되는 건가’ 했었는데 이제는 ‘이렇게 하면 되는구나’로 바뀌고 있어요. 저 자신을 더 믿게 된 거죠.”
“아무렴 회사보다 힘들까요”
유남재(31)씨는 2014년 중소 전자회사에 입사한 지 두 달 만에 퇴사했다. 회사는 유씨에게 매뉴얼도 없이 회계업무를 지시했고 유씨는 오전 2∼3시까지 급여전표를 작성했다. 원래 업무 담당자는 구두로 간단히 일을 설명하고 퇴사해 버렸다.
퇴근도 못하고 숙직실을 집 삼아 일하던 유씨는 후배의 페이스북을 보고 퇴사를 결심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회사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창업해 성공한 후배가 페이스북에 세계를 누비는 사진을 올렸다”며 “퇴직하고 사업해도 ‘설마 이것보다 힘들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떠나 창업을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지만 유씨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창업을 준비한 지 1년 됐는데 이제 조금 실마리가 보이는 것 같아요. 지금은 물론 자금 압박으로 힘들지만 사표 낸 걸 후회하진 않아요.”
고승혁 기자 marquez@kmib.co.kr, 사진=윤성호 기자
[대한민국 신입사원 리포트] 미래 불안하지만 그래도 ‘나만의 꿈’ 찾아 도전 중
입력 2017-05-31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