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알의 기적] 작은 손길로도… 내전·가난·질병의 땅에 희망의 꽃 심는다

입력 2017-05-31 00:04
고창덕 수원북부교회 목사가 지난 16일 르완다 루벤게라시 비린기로 지역에 있는 후원아동 가정을 방문해 선물을 전달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비린기로 지역에 사는 어린이들이 식수로 쓸 물을 물통에 담아 머리에 이고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모습.
월드비전 모니터링 방문단이 지난 17일 루벤게라 제2초등학교를 방문해 연필 등 학습자재를 학생들에게 선물한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후원 - 비후원 가정 환경 큰 차이


아프리카 르완다의 산길은 4륜구동 SUV 차량에게도 쉽게 이동을 허락하지 않았다. 비포장도로에 질서 없이 박힌 돌덩이 탓에 차가 움직일 때마다 온몸이 좌우로 춤을 췄다. 오프로드 레이싱 체험을 하듯 30여분을 달린 차량은 뚝 끊긴 길 위에 월드비전 모니터링 방문단을 내려줬다. “지금부턴 걸어가야 합니다.”

지난 16일 찾은 르완다 루벤게라시 비린기로 지역. 월드비전 담당자를 따라 감자밭, 콩밭, 바나나 나무숲을 차례로 지나자 집 한 채가 눈에 띄었다. 진흙을 뭉쳐 엉성하게 쌓아올린 집은 위태로워 보였다. 3㎡(1평)가 채 되지 않는 방에는 말린 콩 껍질과 나무줄기 위에 찢어진 헝겊이 널브러져 있었다. 이 좁은 집에 세들어 사는 아바이셍가 루이스(31·여)씨는 “헝겊 위에서 두 아들과 함께 잔다”고 말했다.

세 살 때 시력을 잃은 루이스씨에겐 두 아들이 세상의 전부다. 둘째를 낳은 지 6개월 만에 남편은 가족을 버리고 떠났다. 첫째 무하이마나 에릭(16)이 이웃집 소를 키워주며 받는 3달러로 세 식구는 한 달을 살아간다.

동행한 고창덕(59) 수원북부교회 목사는 두 아들의 손을 잡은 채 “하나님께서 이들의 삶에 공급자가 돼 달라”고 기도했다. 고 목사는 인근 시장에서 구입한 밀가루와 생필품을 전달했다. 녹내장이 심한 루이스씨의 눈에선 눈물이 흘렀다. “하나님이 우리 가정의 슬픔을 덜어내 주셨다”며 르완다어로 노래를 불렀다.

방문단이 발길을 돌린 곳은 루이스씨네에서 차로 30여분 떨어진 언덕위의 집이었다. 솔랑주 아미제호(9·여)가 엄마, 언니와 함께 살고 있었다. 아버지 없이 세 식구가 살아가는 루이스씨네와 가정환경은 같았지만 생활여건은 차이가 컸다. 고 목사가 아미제호를 후원결연하고 있기 때문이다. 월드비전으로부터 정기적으로 밀가루와 옥수수 가루를 지원받고 있으며 밭을 빌려 콩 감자 카사바 농사를 지어 생계를 이어간다.

어머니 티네디 게라호시(38)씨는 “후원받은 염소를 볼 때마다 한국이란 나라를 떠올리며 기도했는데 직접 만나게 돼 감격스럽다”면서 “다음 달에 염소가 새끼를 낳으면 생필품을 구입할 것”이라며 고 목사의 손을 꼭 잡았다. 고 목사가 자매에게 시장에서 구입한 새 옷을 입혀주자 방 안이 학예회장으로 변했다.

“감사해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시며 좋은 날씨와 행복을 주실 거예요.”

자매의 노래를 들은 고 목사는 “힘든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두 가정을 보며 이들의 삶을 지탱하는 힘이 곧 신앙이란 걸 확인했다”면서 “신앙이 있는 가정은 작은 도움으로도 더 큰 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이튿날 찾아간 비린기로의 작은 마을에선 한 무리의 아이들이 20리터짜리 물통을 머리에 이고 산 아래로 내려가고 있었다. 성인이 오르내리기도 힘든 가파른 산길을 15분여 따라가 산 아랫자락에 다다르자 짙은 갈색 빛깔의 하천이 보였다. 다음 장면을 바라보던 방문단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각종 이물질이 둥둥 떠다니는 하천에서 아이들이 물통을 채우고 있었다. 올해 열 살인 니오뭉게리 자넷양은 “오전에만 세 차례 물을 뜨러 왔다”며 “지난해 우기땐 물이 불어나 함께 물 뜨러 왔던 동생이 빠져 죽었다”고 말했다.

시프리엔 무냐키린도 르완다 월드비전 담당자는 “인근 마을 240가정 1300여명이 식수·농수로 하천의 물을 쓴다”며 “주민뿐 아니라 야생동물들이 오가는 길목이라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전염병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설명했다. 방문단은 아이들과 동네 아낙네들이 가져온 물통에 흙탕물이 담기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한동안 말을 잃었던 방문단이 다시 미소를 되찾은 건 마을을 떠나 루벤게라 제2초등학교에 도착한 직후였다. 노란색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학교 입구에서부터 병아리떼처럼 방문단을 따라오며 손을 흔들었다. 1962년 설립된 이곳은 2013년 월드비전이 지원하기 시작하면서 지역 내 명문으로 거듭났다. 교실 증축을 통해 콩나물시루 같던 공간이 넓어졌다. 학습자재, 교사 역량강화 프로그램, 물탱크 등을 지원하면서 교육환경도 대폭 개선됐다.

미란다 나데티 교장은 “열악한 학습 환경 때문에 학생들이 필기도 제대로 할 수 없었는데 월드비전의 지원을 받으면서 학업성취도가 크게 좋아졌다”며 “5년 전엔 50%선에 그쳤던 전국 졸업고사 통과율이 지난해엔 97%나 됐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선물로 받은 연필을 들고 활짝 웃는 학생들을 바라보던 고 목사는 “지역 이름인 ‘비린기로’가 이곳 말로 ‘희망’을 뜻한다고 들었는데 미약한 도움이 희망을 꽃 피우는 힘이 된다는 것을 느꼈다”며 웃었다.



■ ‘슬픈 역사’ 르완다 사역 어떻게

전국 30개 사업장에서 3500여명 아동 후원·평화구축 사업


아프리카 중부에 위치한 르완다(지도)는 최근 10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이 8%에 달하는 신흥 경제국이다. 하지만 세계인들의 뇌리엔 ‘르완다 대학살’이란 아픈 역사를 간직한 나라로 기억돼 있다. 1962년 독립하기까지 벨기에 등 유럽열강의 지배를 받았고 식민통치 기간 동안 고착된 지배부족과 피지배부족 간 갈등이 독립 후에도 이어지며 내전이 끊이지 않았다. 국제연합개발계획(UNDP) 인간개발보고서(2014)에 따르면 성인문맹률이 34.1%에 이르고 국민 10명 중 6명(63.2%) 정도가 하루 2달러 이하로 살아간다.

2008년부터 2023년까지 15년 계획으로 구호사업을 펼치고 있는 월드비전은 르완다 전역에 30개의 사업장을 두고 3500여명의 결연아동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16일 월드비전 ‘밀알의 기적’ 모니터링 방문단이 찾은 루벤게라시 비린기로 지역은 수도 키갈리로부터 약 120㎞ 떨어져 있다. 학살사건 이후 전 세계 구호 NGO들이 르완다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지만 비린기로 지역을 비롯한 르완다 남서부는 여전히 어려운 상황이다.

르완다 월드비전은 지역개발사업계획에 따라 교육, 보건·영양, 식수·위생, 갈등해소 및 평화구축 사업을 펼치고 있다. 르완다 월드비전 교육 담당자 앤드류 모건씨는 “학부모와 지역 주민들에게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한다”며 “하루 일과의 대부분을 물 긷는 일에 쓰느라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학교 인근에 식수시설을 설치하는 방법도 강구하고 있다”이라고 설명했다.

신재권 월드비전 경기남부지역본부장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대한민국처럼 르완다에서 펼쳐질 ‘밀알의 기적’을 위해 관심을 부탁한다”고 말했다.

비린기로(르완다)=글·사진 최기영 기자, 그래픽=이영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