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윤고은] “등은 밀수록 좋아”

입력 2017-05-30 17:26

가끔 나는 이런 놀이를 즐기는데, 어떤 공간을 떠올리고 그 공간이 주는 느낌이 ‘+’인지 ‘-’인지를 가늠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기계식 세차장을 떠올릴 때 내 기분은 ‘-’가 된다. 기계식 주차장을 떠올릴 때도 마찬가지고, 초보 운전자가 된 이후로는 그냥 주차장을 떠올려도 ‘-’다. 그런가하면 공항 게이트를 떠올릴 때 내 기분은 ‘+’가 되고, 이른 오전의 카페나 해질녘의 천변도 ‘+’다. 주기적으로 이 놀이를 하다보면 인상과 느낌이란 것이 아주 고정된 게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도 온다. 삶이란 건 현재진행형이니 무언가가 바뀔 여지는 늘 남아 있기 때문이다. ‘+’에서 ‘-’로 바뀌는 공간이 있는가 하면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대중목욕탕을 떠올리면 좀 수동적인 기분이 들곤 했는데 아마도 어릴 때 엄마 손에 이끌려 간 경험 때문일 것이다. 열린 창문 없이 꽉 들어찬 습기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늘 ‘-’였던 그 공간에 대해 조금 다른 생각을 하게 된 건 지난해에 갔던 어느 온천 때문이었다. 이름에서 상상한 건 야외 온천 이미지였는데, 그곳은 단지 온천수를 쓰는 대중목욕탕이었다. 규모도 작고 낡은. 나는 목욕의자를 닦아 앉기도 귀찮아서 벽에 붙은 샤워기 쪽으로 직행했는데, 할머니 한분이 다가와 노란색 이태리타월을 내밀었다. “등 좀 밀어줄래요?” 엉겁결에 이태리타월을 받아들고 그분의 등을 밀기 시작했다. 나란히 선 채로 말이다. 내가 그분의 등을 다 밀고 나자 그분은 내 등을 밀어주겠다고 했다. “아니에요, 괜찮아요. 전 이제 나갈 거예요.” 그런 말도 소용없었다. 그분은 굳이 아니라는 나를 돌려세우고 ‘밀기’ 시작했다. “봐. 미니까 나오잖아!” 확신에 찬 말을 던지시며, 리드미컬하게.

그땐 웬 봉변인가 생각했지만, 지금 그 장면을 떠올리면 ‘-’에 구겨 넣기엔 애매한 감정들이 솟기 시작한다. 등을 번갈아 내밀며 어정쩡하게 서 있던 두 사람의 모습, 거기에 그분이 내뱉었던 한마디 “등은 밀수록 좋아!”까지 재생하면, 어느새 대중목욕탕의 눈금이 ‘+’를 향해 풀쩍 뛰어오르는 것이다.

글=윤고은(소설가), 삽화=공희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