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황태순] 문 대통령, 야당과 만나라

입력 2017-05-29 18:50

쾌속 항진하던 문재인정부가 첫 암초를 만났다.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의 위장전입을 둘러싸고 전선이 형성됐다. 26일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문재인 대통령의 ‘고위 공직자 인사배제 5대 원칙’과 관련하여 사과했다. 선거 캠페인과 국정 운영이라는 현실적 무게가 같을 수는 없다면서 국민의 눈높이에 미치지 못한 점에 대해 양해를 구했다.

야당은 냉담하다. 후보자 발표는 대통령이 직접 해놓고, 사과는 비서실장이 대신 하느냐며 대통령의 직접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이 관련 사실이 주는 사회적 상실감에 비춰 현저히 크다고 판단될 때는 관련 사실 공개와 함께 인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임 실장의 언급을 두고 결국 ‘5대 원칙’을 폐기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맹폭을 가하고 있다.

전운이 조기에 해소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 이 후보자 외에도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도 위장전입의 포화에 갇혔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 김이수 헌재소장 후보자도 이런 저런 논란의 도마에 올랐다. 자칫하면 문재인정부 첫 조각(組閣)이 상당히 늦추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문재인정부는 전임 박근혜정부의 불통과 무능, 최순실 게이트로 상징되는 도덕성 타락에 대한 응징을 바탕으로 출범했다. 때문에 문 대통령 취임 후 보여주는 파격적인 행보를 소통의 노력으로 높이 평가하고 있는 것이다.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 대통령의 다짐에 큰 기대를 거는 것이다. 이제 높아진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할 몫은 집권세력의 마음가짐에 달렸다.

구중궁궐 같은 청와대 본관이 아니라 비서동인 여민관에서 국정을 챙기는 문 대통령의 행보는 참신하다. 청와대 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배식을 받는 모습도 파격이다. 취임한 지 열흘 만에 여야 5당 원내대표들과 청와대에서 원탁에 둘러앉아 오찬을 하면서 함께 국정을 논의하는 광경도 또 다른 기대를 걸게 한다.

이 후보자 문제를 어떻게 푸느냐는 문 대통령의 진정성을 가늠해볼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예전 정부에서도 국무총리나 장관들 인사를 두고 여야 간에 치열한 공방이 벌어졌다. 그때 대통령들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첫째는 임명(지명)을 철회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오기 인사라는 비난을 받더라도 강행하는 것이다.

문재인정부는 전임 대통령의 탄핵으로 비상시 조기 대선을 통해 출범했고, 그나마 정권 인수인계 과정도 없이 바로 국정을 운영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러다보니 인사 검증을 비롯해 적지 않은 부분이 미흡할 수 있다. 하지만 대선기간 중 국민에게 수차례에 걸쳐 거듭 약속한 내용이라면 이를 사실상 번복할 때도 그에 걸맞은 과정과 절차를 거치는 게 정도다.

대통령의 체면을 생각해 비서실장이 대신 총대를 메는 것이 진정 대통령을 위하는 길일까. 임 실장이 나서면서 일이 더 꼬여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또 29일 청와대는 장관청문회가 시작된 2005년 7월 이후 위장 전입자는 배제하겠다는 새 인선 기준을 제시했다. 이 후보자에겐 면죄부를 주자는 것인지 자칫 새로운 논란을 야기할 수 있다.

대통령이 직접 대화에 나서야 한다. 당장 야당 원내대표들과 통화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조찬 모임이라도 갖고 야당 지도부를 설득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우리가 그동안 그토록 부러워하며 인용해 왔던 여소야대 하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보였던 소통 노력을 문 대통령이 마다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첫 단추를 잘 꿰어야만 그 다음도 순조로운 법이다.

황태순 정치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