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스킨라빈스·스타벅스 싸워 이긴 최수진 변호사 “골리앗 기업에 화났다”

입력 2017-05-30 05:00

“스타벅스에서 이렇게 했단 말이야?”

최근 스타벅스커피코리아(스타벅스)에 맞서 싸워 이긴 최수진(44) 변호사는 처음 이 사건을 의뢰받았을 때 깜짝 놀랐다. 지난해 12월 고모(31)씨가 찾아와 “1년간 매일 스타벅스 톨사이즈 무료 음료를 마실 수 있는 쿠폰을 주는 이벤트에 응모해 당첨됐는데 갑자기 쿠폰 1장만 달랑 주겠다고 말을 바꿨다”고 하소연했다.

최 변호사는 분노했다. 스타벅스처럼 큰 규모의 회사가 겨우 100만원 안팎의 상품을 내놓는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이렇게 고객을 무시했다는 사실에 놀랐고 화가 났다.

그는 “7년 전 배스킨라빈스와 싸웠을 때가 떠올랐다”고 말했다. 최 변호사는 2010년 이 아이스크림 회사의 일본여행 경품 이벤트에 당첨됐는데, 회사는 호텔 일일 숙박권으로 퉁치려 했다. 그는 소송을 제기해 이겼다.

아이스크림 회사가 그랬듯 스타벅스도 잘못을 뉘우치거나 반성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고씨를 블랙컨슈머처럼 대했다. 글로벌 브랜드의 감춰진 이면을 본 것 같았던 최 변호사는 잘못을 바로잡도록 하겠다고 다짐했다.

배상받을 돈은 기껏해야 200여만원. 변호사 선임 비용도 안 되는 그야말로 소액 소송이었다. 최 변호사는 일반적인 수임료의 10분의 1 수준만 받고 싸움을 시작했다. 그는 “사실 돈을 생각하면 안 하는 게 낫다”며 “글로벌 브랜드가 규모에 걸맞은 행동을 해야 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돕기로 했다”고 말했다.

6개월이 지난 17일 서울중앙지법은 고씨 측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스타벅스에 “364일치 무료 음료 쿠폰에 해당하는 229만3200원을 지급하라”고 선고했다. 고씨는 현금으로 받고, 나머지 99명의 당첨자들은 원래 약속했던 1년치 톨사이즈 음료 무료 쿠폰을 받게 됐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그에게 ‘최다르크’(잔다르크와 합성어), ‘대기업 스나이퍼(저격수)’라는 별명을 붙였다. 그는 “과분하다”며 손사래를 쳤다.

“제가 뛰어나게 사명감이 있는 게 아닙니다. 불합리한 상황에서 분노를 느끼고, 그 감정에 충실해 잘못된 걸 고치려 했을 뿐입니다.”

아쉬운 기억도 있다. 2011년 KT의 2G 서비스 종료를 승인한 방송통신위원회에 소송을 제기했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다. 자신을 포함해 수십만명이 쓰고 있는 2G 서비스를 대기업이 일방적으로 종료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를 찾는 소비자들의 상담도 줄을 잇는다. 최근에는 마트 행사에 아이를 데리고 갔다가 창피를 당한 여성이 문의를 했다. 에코백을 나눠준다고 해서 아이를 데리고 갔는데 “애들은 받을 수 없다”고 했다. 어린이는 경품을 못 받는다는 얘긴 없었다. 여성은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파리 쫓듯이 쫓아내 모욕감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세 번의 소송을 경험한 최 변호사는 대기업이 소비자를 쉽게 무시한다고 지적했다. 대기업에선 미약한 소비자는 거대한 기업에 제대로 맞서지 못하리라는, 아니 맞서 싸울 생각도 않으리라는 태도가 배어 나왔다고 한다. 그는 “스타벅스 같은 대기업에 이겼다고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는 그만큼 기업에 쌓인 분노가 많다는 뜻”이라며 “기업들이 최소한 법적 절차라도 지켰다면 소비자의 분노가 이만큼 크지 않았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