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0여년간 국제사회의 핵심 축 역할을 해온 미국과 유럽의 상호 협력관계에 균열이 생기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안하무인식 ‘아메리카 퍼스트’에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결국 ‘유럽의 독자생존’을 선언했다. 향후 양쪽의 ‘거리두기’가 본격화될 경우 국제질서가 대전환을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 영국 BBC방송은 “미국과 유럽 간 불확실성의 시대가 열릴 것”이라고 관측했다.
28일(현지시간) dpa통신에 따르면 메르켈 총리는 뮌헨에서 열린 기독민주당(CDU)과 기독사회당(CSU) 연합 행사에서 “지난 며칠간의 경험에 비춰볼 때 유럽이 ‘다른 누군가(others)’를 전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시대는 끝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유럽인은 우리 운명을 직접 다뤄야 한다. 우리의 미래를 위해 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미국, 영국은 물론 러시아를 비롯해 다른 국가들과 우호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럽대륙의 실질적인 지도자인 메르켈 총리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주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이후 터져 나왔다. 두 회의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나토 회원국들이 방위비를 충분히 부담하지 않는다”고 질타했다. 또 기후변화, 무역, 안보, 러시아 문제 등 핵심 의제에서 ‘G6’와 파열음을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특히 독일의 대미 무역흑자를 거론하며 “독일은 나쁘다. 정말 나쁘다”고 비난했다. 이어 독일이 지금처럼 자동차를 수출할 수 있게 내버려두지 않겠다고 윽박질렀다. 메르켈 총리는 G7 정상회의 폐막 기자회견에서 “무척 어려웠고, 매우 불만족스러웠다”고 이례적인 공개 비판을 내놨다.
이에 대해 뉴욕타임스(NYT)는 미국이 더 이상 신뢰할 만한 동맹국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고 분석했다. 오랜 우방인 유럽이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에 회의를 나타냈다는 평가다. 이보 달더 전 나토주재 미국대사는 “미국이 이끌고 유럽이 뒤따르는 시대는 끝났다”고 진단했다.
메르켈 총리가 트럼프 대통령의 리더십에 분명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고 워싱턴포스트(WP)는 평가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취임 후 온건한 태도를 보일 것이라는 유럽의 기대가 이번 첫 순방에서 무너져 내렸다는 것이다.
메르켈 총리는 이날 프랑스와의 관계에 최우선 순위를 두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의 자국 우선주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과 맞물려 유럽은 독일과 프랑스를 중심으로 지역 내 현안에 집중하고 독자적인 목소리를 낼 것으로 예상된다. 메르켈 총리가 오는 9월 총선에서 4연임을 달성한 뒤 강화된 리더십을 발판으로 장기적이고 구체적인 변화를 준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도 대미 강경 입장을 시사했다. 그는 최근 트럼프 대통령과의 ‘6초간의 악수’에 대해 “비록 상징적인 것일지라도, 작은 양보도 하지 않겠다는 뜻을 보여줘야 했다”고 말했다. 지난 25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첫 만남을 가진 두 사람은 손마디가 하얗게 변할 정도로 강하게 악수했다.
신훈 기자 zorba@kmib.co.kr
‘70년 우정’… 멀어지는 美-유럽
입력 2017-05-30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