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인드링크’ 사업 1년… 정신질환 조기 발견·치료율 4배 ‘쑥’

입력 2017-05-30 05:02
전남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김성완 교수가 광주 북구에 있는 청소년 정신건강 특화센터인 마인드링크에서 상담하고 있는 장면. 광주정신보건사업지원단 제공

광주 서구에서 어머니와 함께 사는 김모(35)씨는 몇 년 전 아버지의 외도로 정신적 충격을 받은 뒤부터 환청에 시달렸다.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제대로 된 치료는커녕 병명조차 진단받지 못했다. 그런 김씨에게 뜻밖에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직접 찾아왔다. 정부와 광주시가 시범운영 중인 ‘마음건강주치의’ 사업이었다. 인근 정신건강증진센터 소속 의사가 집까지 방문해 김씨의 병을 살폈다. 김씨는 조현병 판정을 받고 가까운 의료기관에 연계돼 입원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우울증 증상으로 학업을 포기할 뻔했던 10대 Y군은 광주 북구에 있는 청소년 정신건강 특화센터인 ‘마인드링크(Mind Link)’에서 치료받으며 학교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Y군은 “정신과 상담이라 무서울 것 같았는데 친절하게 고민을 들어줘 너무 좋았다”고 말했다. 부모도 “병원이 아닌 곳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정신건강의학과 선생님을 만날 수 있어 접근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만족스럽다”고 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6월부터 광주에서 시작한 마음건강주치의와 마인드링크 시범사업이 1년 만에 성과를 내고 있다. 조현병 우울증 조울증 등 정신질환을 조기에 찾아내 치료로 연계되는 비율이 사업 전보다 4배 넘게 증가했다. 또 10, 20대 초기 정신질환자 치료·관리에 집중한 결과 재입원율이 80% 가까이 줄었다.

마음건강주치의는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병원이 아닌 학교나 정신건강증진센터 등 지역에 직접 나가서 주민을 만나 상담하는 제도다. 필요하면 가정 방문도 한다.

29일 복지부와 광주정신보건사업지원단장인 전남대병원 김성완 교수에 따르면 광주 5개구의 정신건강증진센터와 중독관리센터에서 지난해 6월부터 올 4월 말까지 1905명이 마음건강주치의를 찾아 월평균 200여명이 상담을 받았다. 이 가운데 40.3%는 실제 정신질환이 발견돼 정신과에 연계됐다. 제도 시행 전 의료기관 연계율(9.4%)보다 4.3배 늘었다.

광주 지역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의 3분의 1인 45명이 마음건강주치의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서로 돌아가며 센터에 근무하면서 주민들을 수시로 만난다.

마인드링크는 청소년층만을 대상으로 한다. 초발(初發) 정신질환 관리의 혁신 모델로 평가받는다. 김 교수는 “조현병 등 중증 정신질환은 25세 전 75%가 발병하고 20대 전후 청년 4명 중 1명이 정신질환을 앓고 있다”면서 “정신질환도 치료의 ‘골든타임’이 있는데, 조기 발견과 개입을 위한 마인드링크가 질환의 만성화를 막고 회복을 촉진해 사회복귀를 돕는 좋은 모델이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신보건 전문요원이 상주하며 학생이나 청년 정신질환자들에게 그룹 인지치료, 스마트폰 앱을 통한 사례 관리, 가족상담 서비스 등을 제공하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기존 정신건강증진센터에서 다른 연령층과 섞여 상담받을 때보다 이용자가 3배 이상 증가했다. 광주만 아니라 전남북에서도 환자들이 찾아올 정도다. 마인드링크 이용자 82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서비스 전 2081일에 달했던 평균 입원 일수가 서비스 후 443일로 78.7% 감소했다.

복지부는 광주 시범사업 성과를 토대로 다른 지역으로 확산을 추진하고 있으나 예산 확보에 난항을 겪고 있다. 이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지역사회 정신보건기관에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가 상주하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만 전국 225개 기초정신건강증진센터에 상근하는 전문의는 단 2명뿐이다.

상근 전문의 수를 늘리거나 민간 병·의원 의사들의 적극 참여를 유도하려면 정부 예산 지원을 대폭 늘어야 한다. 정신건강증진센터에는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각 50%씩 예산을 지원한다.

올해 중앙정부의 지역 정신보건사업 예산은 404억원으로, 10여년째 제자리걸음이다. 복지부는 지난해 마음건강주치의 사업을 전국 시·도로 확대하려 예산 신청했으나 기획재정부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 교수는 “30일 시행되는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불가피하게 퇴원하게 되는 정신질환자들이 지역사회에서 치료와 재활을 계속할 수 있도록 지역사회 정신보건 인프라 확충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말했다.

글=민태원 기자 twmin@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