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부실 검증 사과하지 않고 양해 당부한 문 대통령

입력 2017-05-29 17:23
문재인 대통령은 29일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를 비롯한 일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 및 탈세 의혹 등과 관련, 국민과 야당에 양해를 구했다. 그러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인사 기준을 이른 시일 내에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문 대통령이 문제 해결을 위해 직접 나선 점은 나름 평가할 만하다. 하지만 형식과 내용 모두 상식에서 벗어나고 기대 이하다. 양해를 구하기에 앞서 먼저 유감 표명과 사과를 하는 게 순리고 도리다.

문 대통령은 “국정 공백을 최소화하고 인사 탕평을 요구하는 국민 기대에 부응하고자 당선 첫날 총리 후보자를 지명했으나 국회 인준이 늦어지고 정치화되면서 저의 노력이 허탈한 일이 돼 버렸다”고 말했다. 이는 본말이 전도된 인식이 아닐 수 없다. 대통령의 말대로 총리 인선이 이뤄지고 내각이 신속히 구성돼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도록 원인을 제공한 쪽은 현 정부다. 스스로 정한 원칙을 지키지 못했다면 사과와 유감 표명을 먼저 하고 협조를 구하는 게 상식이다.

문 대통령은 또 “특별히 5대 중대 비리자는 공직에서 배제하겠다는 공약을 한 것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 특히 문제가 됐던 사안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과거 정부에서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한 홍역을 치렀는지, 또 이로 인해 훼손된 국정동력을 감안할 때 옳은 지적이다. 그렇다면 스스로는 더 엄격해져야 하는데도 되레 대통령은 “예외 없는 원칙은 없다. 그렇다고 고무줄 잣대가 되어서도 안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무슨 말인지 앞뒤가 맞지 않고 이해하기도 힘들다.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서 도덕적 결함이 없는 인선을 하는 것은 쉽지 않다. 인사검증 체계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고, 후보자 본인이 신고를 정확하게 하지 않을 경우 걸러낼 시간과 장치가 많지 않다는 점도 이해된다. 그러나 총리 및 장관 후보자는 새 정부가 제시한 ‘인사배제 5대 원칙’에 위배될 뿐 아니라 몇몇 후보자는 2∼3가지를 동시에 어긴 의혹마저 짙다. 더욱이 새 정부 스스로 과거 정부와는 다른 도덕성을 특별히 강조해온 점으로 비춰볼 때 자기반성이 우선이어야 한다.

그렇더라도 야당은 이 문제를 정략적으로 접근해선 안 된다.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상황은 매우 가변적이고 위중하다. 북한은 새 정부 출범 이후 이미 3차례나 미사일 발사 실험을 했고 이에 대한 국제적 공조가 절실한 상황이다. 시급히 내각이 구성돼야 하는 이유다. 국민의당이 대승적 차원에서 총리 인준안 처리에 협조키로 한 것도 이 때문이라고 본다. 자유한국당은 반발했으나 국가적 차원에서 접근하기 바란다. 내가 당했으니 너도 당해보라는 식으로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