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공약에서 국가정보원의 국내 정보수집 업무를 전면 폐지,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혔다. 또 국정원 대공수사기능도 경찰 안보수사국을 신설해 이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동안 국정원의 불법적 정치 관여나 정보활동, 대공수사를 명분으로 한 인권 유린 등을 감안하면 상당 부분 이해가 간다. 군사정권이 아닌 민주화 이후 정권에서도 불법 도청과 선거에 개입하기 위한 댓글 사건이 발생했으니 국정원의 일탈 행위가 얼마나 뿌리뽑기 힘든지도 알 수 있다. 게다가 정권마다 불거지는 출세를 위한 일부 국정원 인사들의 정치권력 줄대기는 거의 고질병에 가깝다.
하지만 이런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전적으로 국정원의 기능 때문에 발생했다고는 볼 수 없다. 국정원의 흑역사는 거의 모두가 대통령 또는 정치 실세의 위법한 정보사용 욕구와 국가 아닌 정권·사람에게 충성하는 내부 관계자의 그릇된 충성심이 어우러져 일어난 것들이다. 국정원의 기능은 죄가 없다. 사용자들이 사악하게 사용(私用)하거나, 자질이 안 되는 이들이 이용했을 뿐이다.
따라서 국정원의 국내 정보수집 전면 폐지 공약은 재고돼야 한다. 우리는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국경이 무의미한 시대에 살고 있다. 국내와 해외 정보의 구분은 천진난만한 발상이다. 외국 국적으로 또는 외국에서 신분을 세탁해 입국한 간첩을 수사할 경우 어떻게 정보 수집을 할 것인가. 국가 차원의 산업 기밀을 보호하고 유출을 막는 데 국내외로 정보를 분리해 수집할 수 있는가. 9·11 이후 서방 정보기관들은 테러 예방과 방첩을 위해 국내외 정보 수집을 통합·강화하는 추세다. 서훈 국정원장 후보자도 29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국내외 정보를 물리적으로 구분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국정원 개혁의 초점은 기능 약화가 아니라 정치 관여나 불법 활동에 대한 통제·감시·처벌을 지금보다 어떻게 더 효율적으로 강화하느냐에 모아져야 한다.
대공수사권 폐지는 당장 결정할 문제가 아니다. 한 기관이 정보 수집과 수사 두 권한을 함께 가짐으로써 일어날 수 있는 폐단은 분명히 있다. 정보활동(CIA)과 수사(FBI)를 분리한 미국 등 선진국 사례를 검토하고 장단점을 비교해 결정할 필요가 있다.
[사설] 국정원 개혁, 기능 약화보다 통제를 강화해야
입력 2017-05-29 1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