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오세요 여러분, 환영합니다.”
암갈색의 목재 출입문 빗장이 풀리자 방문객을 맞는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지난 26일 오후 2시 서울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금남의 집’ 대한성공회 성가수녀원이 잠시 문을 열었다. 서울 중구가 주최한 역사탐방축제 ‘정동야행’의 일환으로 2015년 첫 개방한 이래 3번째다.
“와∼”. 수녀원 마당에 꾸며진 아담하고 소박한 정원을 마주하자 방문객들 사이에선 짧은 탄성이 터져 나왔다. 기역(ㄱ)자를 돌려놓은 듯한 한옥채 앞마당에 장미와 라일락 세단풍 등이 곱게 피어 있었다. 방문객들은 길다랗게 놓인 한옥채의 좁은 마루에 일렬로 걸터앉았다.
“여러분이 앉아 있는 이 한옥은 150년이 넘었을 거예요. 수녀원이 생기기 훨씬 전부터 있었으니까요. 지금은 성공회 수녀 수련생들의 교육 장소로 사용되고 있고요. 그 옆 한옥채는 매주 (성공회) 미사를 드릴 때 쓰이는 빵을 만드는 곳이랍니다.” 성가수녀원의 산 증인으로 꼽히는 오인숙(77) 수녀가 수녀원 곳곳을 설명했다. 1964년 이곳에 들어온 그녀는 대한성공회 최초의 수녀 사제이기도 하다.
“성가수녀원은 1925년에 지어졌지만 시련도 있었죠. 6·25 전쟁 때는 인민군들의 사무실로 사용되기도 했고, 전쟁으로 건물이 허물어져서 다시 지은 게 1960년이랍니다. 대한성공회 제4대 주교를 지낸 세실 쿠퍼(한국명 구세실) 주교가 유산 일부를 기증해주신 덕분이죠.”
빨간 벽돌의 ‘피정의 집’과 외빈관, 주교관 등 여러 채의 한옥이 정원을 감싸고 있는 듯한 건물 구조는 포근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고요함과 아늑함도 느껴졌다.
“많은 분들이 ‘도심의 오아시스’라고도 해요. 해외에서 온 손님들도 서울 시내 호텔 대신에 이곳 외빈관에 머물기를 원하시는 분들도 많답니다.”
방문객들과 정원을 거닐던 오 수녀가 정원 한쪽 수풀이 우거진 벽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형상의 ‘십자고상(十字苦像)’이 보였다. 성가수녀원의 명물로 1890년대 초반 영국성공회 수녀들이 한국에 건너오면서 가져온 동(銅) 재질의 십자가다. 제작된 지 200년은 족히 넘는 거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힘을 의지하여 이 세상 모든 것을 기쁘게 끊어 버린 생활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는 성가수녀원의 설립 목적을 떠올리게 만드는 십자고상이었다. 방문객들에겐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 섬김을 잊지 말아 달라’는 메시지로 와 닿았다. 방문객으로 참가한 윤철종(고촌순복음교회) 목사는 “성공회 수녀들이 이곳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창문’은 과연 무엇인지 느껴보고 싶었다”면서 “짧지만 특별한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영국 수녀들이 전한 200년 넘은 십자고상… 믿음의 유산 오롯이
입력 2017-05-3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