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정거래위원회는 겉으로는 의기양양했다. 국정기획자문위원회 김진표 위원장은 “경제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부처는 공정위밖에 없다”며 힘을 실어줬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치욕의 주였다. 김학현 전 공정위 부위원장 등 전·현직 간부와 직원들이 줄줄이 이재용 삼성 부회장 재판에 증인으로 끌려 나갔다.
재판에서 공개된 내용은 충격적이다. 삼성은 지난해 7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으로 신규순환출자가 발생해 이를 해소해야 했다. 검찰이 재판에서 제시한 증거에 따르면 공정위는 당초 삼성에 삼성물산 주식 1000만주 처분을 결정했다가 청와대와 논의한 뒤 이를 500만주로 줄였다. 특히 김 전 부위원장은 삼성에 500만주로 줄어드는 상황을 알려줬다. 여기에는 공정위 전직 부위원장인 서동원 김앤장 고문도 등장했다. 청와대를 등에 업은 김 전 부위원장의 지시에 사무처장과 국·과장들은 무력하게 따르기만 했다. 그나마 실무진인 S서기관이 외압일지를 적어놓아 이런 전모가 세상에 밝혀질 수 있었다. 공정위 내부에서 일어난 삼성과 청와대, 공정위 3자의 부당거래를 막을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았다.
새 정부 들어서도 공정위의 ‘눈치 보기’는 여전하다. 경제개혁연대가 공정위에 삼성 위장계열사와 관련한 새로운 증거를 근거로 신고한 것은 지난해 10월이다. 하지만 공정위는 6개월 동안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다가 지난달에야 조사에 착수했다. 조사 착수 시점은 김 공정위원장 후보자가 문재인캠프에 합류한 직후이고, 당시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김 후보자였다. 공정위가 박근혜정부 눈치를 보면서 이 사안을 뭉개고 있던 것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아는 사실이다. 문 대통령은 공약에서 공정위 권한 강화를 약속했다. 김 후보자도 구체적으로 기업집단국을 신설하겠다고 밝혔다. 경제민주화를 위해서는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공정위에는 아직도 정치적 판단이나 청와대 외압에 굴복하지 않는 시스템은 마련돼 있지 않다. 자칫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가 될지 걱정된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
[현장기자-이성규] 靑 외압 차단 시스템 시급한 공정위
입력 2017-05-28 18:13 수정 2017-05-28 20:5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