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비리 ‘줄낙마 흑역사’… 세부 매뉴얼 필요성 대두

입력 2017-05-28 18:10

문재인 대통령의 초대 총리 임명이 지연되는 이유는 공직 배제 5대 원칙 때문이다. 병역 면탈, 부동산 투기, 탈세, 위장 전입, 논문 표절 등 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인사 원칙이 새 정부 조각(組閣)을 지연시키는 부메랑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5대 문제는 문재인정부뿐만 아니라 이전 정부에서도 장관 후보자들의 단골 낙마 사유였다. 5대 원칙 자체가 ‘무리한 약속’이었고, 이 기준에 맞는 인사들로 국무회의를 채우기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회의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반복되는 낙마 사례

정권 출범 초기 총리와 장관 등 고위직 인사 난맥은 인사청문회 제도가 시작된 이후 역대 정부에서 거듭돼온 고질병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인 2013년 1월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을 박근혜정부 첫 총리로 지명했으나, 김 후보자는 지명 닷새 만에 자진사퇴했다. 김 전 소장은 아들의 병역 면제와 부동산 투기 의혹에 발목을 잡혔다. 특히 박근혜정부에선 김 전 소장을 포함해 안대희 전 대법관과 문창극 전 중앙일보 주필 등 총리 후보자 3명이 낙마하는 오점을 남겼다.

이명박정부에선 위장전입 의혹으로 난타당한 고위직 후보자들이 많았다. 이인복 대법관 후보자, 박재완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박은경 환경부 장관 후보자 등이 위장전입 논란에 휩싸였다. 이 중 신재민, 박은경 후보자가 낙마했다. 당시 야권에선 이명박 대통령 자신이 대선후보 시절 위장전입 사실을 시인하고 사과했다는 점을 거론하며 ‘위장전입은 고위직 필수 비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노무현정부에선 처음으로 논문 표절 의혹으로 김병준 전 교육부총리가 낙마했다. 김 전 부총리는 2006년 7월 임명 이후까지 지속된 야권과 여론의 압박에 밀려 자진 사퇴했다. 앞서 2005년 3월엔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20년 전 부동산 투기 의혹과 위장전입 논란으로 사퇴했다. 이기준 교육부총리도 세금탈루 의혹 등 논란으로 2005년 1월 취임 3일 만에 옷을 벗었다.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 제도가 2000년 6월 도입된 이후 2002년 장상, 장대환 총리 후보자는 모두 위장전입 논란 등으로 낙마했다. 2005년 7월 국무총리뿐 아니라 모든 국무위원 후보자들이 인사청문회를 거치도록 법 개정이 된 후 낙마 사례는 더욱 늘어나고 있다.

세부 평가 매뉴얼, 신사협정 필요

전문가들은 세밀한 인사 검증 매뉴얼을 만들어 인선 과정에서부터 적용해야 반복되는 참사를 막을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8일 “땜질식 대안을 만들지 말고 본질적으로 인사검증 시스템을 새로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추상적인 인사 배제 원칙이 아니라 구체적인 매뉴얼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조진만 덕성여대 정외과 교수는 “정치권의 보다 명확한 ‘신사협정’이 필요해 보인다”면서 “몇 가지 절대 인준해선 안 되는 사유를 분명히 해 불필요한 논란을 줄여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위장전입의 경우 ‘투기 목적이 증명됐을 때’와 같은 단서를 달아 불가 사유를 분명하게 만들자는 것이다. 누구는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났는데도 고위직에 오르고 누구는 고배를 마시는 형평성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취지다.

구정우 성균관대 사회학과 교수는 “세부적인 평가 기준을 만드는 과정에 정치권뿐 아니라 전문가와 시민사회 등도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다만 구 교수는 “문 대통령 스스로 밝혔던 인사 원칙과 실제 인사가 모순되는 상황이 벌어진 만큼 지금은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야권을 설득하는 게 맞는다”고 말했다.

공직 배제 5대 원칙 자체가 ‘무리한 약속’이었다는 시각도 있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5대 문제에 해당되지 않는 인사를 찾을 수는 있겠지만 국무총리와 장관 등 18개 고위직을 그런 인사들로 채우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이는 다음 정부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정 비리가 사회적으로 문제가 됐던 시점 이전에 발생한 잘못에 대해선 일정 부분 책임을 덜어주거나 비리 사유에 따라 낙마 여부를 구체적으로 정하는 방식도 검토해 볼 만하다”고 말했다. 이밖에 국회의원 출신 후보자에 국회가 비교적 관대한 잣대를 들이대는 문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김경택 김판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