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재벌 개혁 앞서 ‘乙 100만명 눈물’ 닦아 준다
입력 2017-05-28 18:13 수정 2017-05-28 20:57
공정거래위원회가 재벌 개혁에 앞서 100만 대리점·가맹점주와 중소기업 등 ‘을’의 눈물을 닦아주기 위한 강력한 제도 개선에 나섰다. 특히 을에 대한 담합 예외 인정은 기존 공정거래정책의 일대 전환을 이끄는 사안이라는 분석이다.
김상조·박광온 한목소리
담합은 공정거래정책의 근간이다. 공정위는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EU) 경쟁 당국도 리니언시(담합자진신고) 업체를 제외하고는 담합행위에 어떤 예외를 두지 않고 있다. 공정위가 문재인정부 출범에 발맞춰 대기업으로 대표되는 ‘갑의 횡포’ 근절을 위해 중소기업과 대리점·가맹점주들에게 담합 처벌 예외를 추진하는 것은 그만큼 파괴력이 큰 사안이다.
물론 이것이 현실화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법 19조 ‘부당한 공동행위의 금지’ 조항이 개정돼야 한다. 하지만 당정이 경제민주화 1호 법안으로 관련 개정안을 강력 추진키로 한 만큼 현실화될 가능성이 높다.
우선 김상조 공정위원장 후보자는 학자 시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담합에 예외조항을 둬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 후보자는 2012년 ‘경제민주화의 의미와 과제’ 논문에서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이 대기업과 동등한 위치에서 협상을 하기 어려운 만큼 이들이 집단을 이뤄 공동으로 협상력을 높이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서는 이들이 모여 함께 협의하는 공동행위(담합)는 필연적으로 따라올 수밖에 없다.
그동안 공정위는 이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공정위 관계자는 28일 “중소기업이나 소상공인에 담합 예외를 인정한다는 것은 카르텔(담합)정책 방향의 일대 전환이 필요한 사안”이라고 설명했다. 국정자문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지난해 8월 가맹점·대리점주 등 거래상 ‘을’ 지위에 있는 이들의 거래조건 합리화를 위해 담합 예외를 인정하는 공정거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정의 핵심 인사들이 강력하게 추진하는 사안인 셈이다. 당정은 다음 달 임시국회에서 관련법 개정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제재 대상과 범위 확대
‘을’을 대상으로 한 담합 예외가 적용될 경우 논리적으로 가맹점주와 대리점주들이 사업자단체를 구성해 대기업에 단체로 협상할 수 있는 단체구성권 역시 부여될 수밖에 없다.
‘갑의 횡포’를 막기 위한 제도 개선과 함께 과거 이뤄졌거나 현재 진행 중인 관련 불공정행위 제재 강화도 추진된다. 대리점 물량 밀어내기 등으로 촉발된 남양유업 사태는 지난해 대리점업법을 탄생시켰다. 그러나 2016년 12월 법 시행 이전에 체결된 계약은 아무리 불공정해도 이 법으로 제재 대상이 될 수 없는 사각지대였다. 공정위는 대리점 계약이 5∼10년 등 장기계약이 많다는 점을 감안해 법 시행일과 상관없이 모든 계약을 적용대상으로 할 방침이다. 공정위의 한정된 인력은 지자체에 일부 조사권한과 과태료 부과 등 처벌권한을 내어주는 방식으로 보완될 것으로 보인다.
세종=이성규 신준섭 기자 zhibago@kmib.co.kr, 그래픽=이은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