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만명 관중의 열띤 환호 속에서 시구(始球)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어요. 제 이름을 새긴 유니폼을 입고 뛸 수는 없지만 반드시 훌륭한 야구기자가 될 겁니다.”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 선 김대환(15·전남 목포시 옥암동)군은 “꿈에 그리던 야구장의 마운드에 섰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기아의 열혈 팬인 김군은 시구에 앞서 평소 가장 좋아하는 양현종 선수에게 투구법을 배웠고 안치홍 선수와도 이야기꽃을 피웠다.
김군 가족과 조우한 양 선수는 “기아의 승리 소식이 고통을 잊게 하고 힘든 병마를 견디는 데 등불이 되고 있다는 대환이의 말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양 선수는 책과 유니폼, 글러브, 볼 등에 “빨리 나아라”는 격려와 함께 사인을 해줬고, 김군의 시구도 직접 받아줬다.
2002년생인 김군은 18개월이 넘도록 걷지 못할 만큼 신체발달이 더뎠다. 하지만 입시학원을 운영하는 부모님과 네 살 터울인 누나(20·울산과기대 1년)의 보살핌을 받으며 쾌활하게 자랐다. 중학교에 1등으로 입학할 만큼 공부도 잘했다.
김군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뇌종양’ 진단이 내려진 것은 지난해 봄 방학 때였다. 가족과 나들이한 영화관에서 자막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다는 김군을 병원에 데려가 시력검사 등 정밀검진을 받았다가 뇌종양의 일종인 ‘수모세포종’이라는 충격적인 결과를 들었다.
이후 운동장애와 뇌신경마비 등의 증상이 찾아왔고 김군은 진단 1주일여 만인 지난해 2월 18일 17시간에 걸친 종양제거 수술을 받았다. 이어 뇌압조절을 위한 션트수술과 지난 3월엔 조혈모세포 이식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6차까지 이어진 항암치료와 30여회의 양성자 치료도 이어졌다.
버거운 항암치료에도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된 김군의 열렬한 야구사랑만큼은 말릴 수 없었다. 차단 병상에 입원했을 때도 김군은 기아의 2군 경기까지 꼬박꼬박 챙겼고 항암치료 후 집으로 갈 때는 야구경기가 없는 날에도 야구장에 들르자고 부모님을 졸랐다. 김군의 어머니 김태연(45)씨는 “그동안 1년에 한두 번 남짓 야구장에 데려간 게 후회스럽다”며 “건강이 회복되면 전문적으로 야구를 연구할 수 있게 도와주고 싶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김군의 시구는 난치병 아동의 소원성취를 통해 삶의 희망을 불어넣는 한국메이크어위시재단과 프로야구 기아 구단, 국민일보의 협력에 따라 이뤄졌다. 김군의 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지난해 재단 측에 장문의 편지를 보내 기아 경기의 시구를 요청했다. 김군 가족과 의료진, 자원봉사자 등 10여명은 이날 구단이 제공한 ‘스카이박스’ 관람석에서 경기를 관람했다.
지난달 면역력이 다소 회복돼 무균실에서 나온 김군은 “스카이박스에 앉아 경기를 보고 시구까지 하게 돼 한없이 기쁘다”며 소원을 이뤄준 구단과 메이크어위시재단에 거듭 감사를 표했다. 1980년 미국에서 창립된 이 재단은 2002년 말 출범한 한국지부를 포함해 50여개 국가에서 활동 중이다.
광주=장선욱 기자 swjang@kmib.co.kr
꿈에 그리던 야구장서 시구… “뇌종양 이길 거예요”
입력 2017-05-29 0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