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4.0시대] 풍력·태양광발전으로 전기 저축해 쓰는 ‘에너지 자립섬’
입력 2017-05-29 05:01
제주도 모슬포항에서 배로 15분 거리. 지난 11일 오후 가파도 부두에 도착하자 주택가 뒤로 우뚝 선 풍력발전기 2대가 가장 먼저 눈에 들어왔다. 청보리 축제와 함께 이제는 가파도의 상징처럼 자리잡은 높이 30m의 풍력발전기다.
주택가로 걸어 들어가니 태양광 패널이 설치된 지붕이 이색적인 풍광을 자아냈다. 지난 1일 기준으로 가파도 내 128가구 중 48가구가 태양광 패널을 설치했다. 1260만원의 설치비용 중 주민은 10%를 부담하면 된다.
한국전력은 제주도와 공동으로 가파도를 ‘탄소 없는 섬(탄소제로섬)’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했다. 마이크로그리드는 섬처럼 전력계통과 연계되지 않은 고립 지역에서 신재생 발전설비와 에너지저장장치(ESS)를 이용해 자체적으로 전력을 생산·저장·공급할 수 있는 독립형 전력망이다. 스마트그리드의 소규모 버전인 셈이다. 이 때문에 가파도는 ‘에너지 자립섬’이라고도 불린다.
세계 마이크로그리드 시장은 2020년 4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전은 가파도에서 전력망 지능화, 스마트미터 보급, 시스템 구축 총괄 및 운영을 맡았다. 제주도는 사업을 주관하면서 전기차와 충전인프라 구축을 담당했다.
가파도 정중앙에는 마이크로그리드 운영센터가 자리잡고 있다. 센터 한쪽 벽면을 꽉 채운 대형 스크린에는 발전기별 현황이 실시간 표시되고 있었다. 가파도에서는 디젤발전기(450㎾)와 함께 풍력발전기(500㎾), 태양광 발전기(174㎾)가 전력을 만들어낸다. 아직까지는 수치상 발전용량과 무관하게 디젤발전이 전체 용량의 30% 정도를 차지한다. 신재생 에너지원 특성상 햇볕과 바람이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신재생 에너지의 효율을 끌어올리는 역할은 ESS와 전력변환장치(PCS)가 맡고 있다. ESS는 전력을 변환해 저장했다 필요한 시기에 전력을 공급하는 장치다. 리튬이온 또는 납 기반의 배터리가 핵심이다. 바람이 불 때, 해가 떠 있을 때 풍력과 태양광 발전기가 각각 만들어 낸 전기를 ESS 배터리에 저장한다. 전력 저장과 공급은 PCS가 제어한다.
2011년 11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가파도에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을 구축하는 과정에 총 143억원의 사업비가 투입됐다. 국비 14억원, 도비 45억원에 한전과 남부발전이 각각 40억원, 25억원을 보탰다. 지난해 6월 시스템 안정화 작업이 끝나자 바로 시운전에 돌입했다.
신재생 에너지 장치를 중심으로 한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 구축 결과로 가파도 내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연간 776t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발전연료는 연간 30만ℓ가 절감될 예정이다. 한전 관계자는 “가파도에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생기면서 매달 외부에서 섬으로 들어오던 기름연료가 이제는 3∼4개월마다 들어오고 있다”며 “시운전 돌입 이후로 기름연료 지출은 9억원 정도 줄었다”고 말했다.
전력의 공급과 수요가 스마트하게 진화하면서 여름마다 반복되는 ‘전기요금 폭탄’도 해소될 전망이다. 한전은 에너지와 정보통신기술(ICT)을 융합한 에너지 신산업을 통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한다는 방침이다. 스마트그리드와 스마트계량기, 빅데이터, 사물인터넷(IoT) 등으로 에너지 효율을 극대화한다는 설명이다. 최종적으로는 도시·빌딩 단위로 에너지 효율을 높여 스마트시티, 스마트빌딩을 보급한다는 목표다.
특히 스마트그리드는 에너지 신산업의 핵심이다. 양방향·실시간으로 전력 정보를 교환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는 최적화 시스템이다. 이미 한전 구리지사 등 100개의 한전 사옥에는 스마트그리드 스테이션이 설치돼 있다. 이를 기반으로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스마트시티 사업모델을 수출하기도 했다.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은 가파도에 이어 전남 진도 가사도, 경북 울릉도와 인천 덕적도로 확대되고 있다.
나아가 한전은 전력 빅데이터를 활용해 전력 소비패턴을 분석한 뒤 개별 고객에게 적합한 전력 소비방식을 알려주는 컨설팅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10년 뒤에는 빅데이터 기반의 컨설팅회사로 변모한다는 청사진도 마련했다.
가파도=유성열 기자 nukuva@kmib.co.kr, 그래픽=이석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