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정부부처가 사전 협의나 충분한 검토 없이 대규모 예산이 수반되는 정책을 묻지마식으로 내놓고 있어 후유증이 우려된다. 새 정부 정책 기조에 따라 정책이 바뀌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대통령 공약사항이라고 해서 조 단위의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무조건 밀어붙이는 것은 옳지 않다. 더욱이 찬반이 극명한 정책의 경우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부처 간 사전 협의가 성공의 전제조건인데도 이런 절차와 과정이 무시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어린이집 누리과정(3∼5세 무상보육) 정책이다. 교육부는 25일 누리과정 소요예산 전액을 중앙정부가 부담하겠다고 했으나 기획재정부 측은 “처음 듣는 내용”이라고 밝혔다. 연간 2조원이 드는 정책을 부처 간 협의 없이 덜컥 발표한 것이다. 학생 수가 줄어드는데도 예산이 증가하는 현행 지방교부금 제도를 보완하려던 기재부로선 난처하게 됐다. 더욱이 얼마 전만 하더라도 누리과정 예산의 일정 부분을 지자체가 부담해야 한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던 교육부다. 이러니 영혼 없는 공무원 소리 듣는 게 아닌가. 정권이 아닌 국민에 충성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도 없다.
이뿐 아니다. 정부는 공무원 1만2000명을 하반기에 추가 채용키로 하면서도 직군별 인력 수요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고 6월 중 채용 공고를 내고 10월 중 시험을 치를 것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어느 분야에 몇 명의 인력이 필요한지, 조달 가능한 소요 예산은 얼마인지 등등을 먼저 따진 뒤 채용 인원과 시기를 결정하는 것이 순서다. 국방, 농업 등 다른 정책에서도 이런 묻지마식 정책 발표가 잇따르고 있어 문제가 여간 심각하지 않다. 국정엔 연습이 없다. 의지가 옳고 선하다고 해서 결과가 반드시 좋게 나타나는 건 아니다. 옳은 정책을 성공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해선 철저한 사전 검토와 준비, 부처 간 조율이 선행돼야 한다. 대통령 공약일수록 더 그래야 한다.
[사설] 대통령 공약이라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아서야
입력 2017-05-26 17: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