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의 격전 속에서도 루터는 자신의 신학을 정립하고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다. 칼뱅 역시 ‘기독교강요’를 집필함으로써 예정론적인 개혁신학의 터전을 마련했다. 교회개혁의 효과적 실천을 위해서는 신학적 이론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개혁과 부흥을 위해서는 목회와 신학이 조화를 이뤄야 한다. 교회를 섬기는 목회자들과 교회를 위해 신학을 제공하는 신학자들의 협력 속에서 진정한 교회 개혁이 가능하다.
보수와 진보, 중도를 대표하는 3대 신학자
성경의 올바른 해석과 교리 정립은 초기 교부시대로부터 종교개혁기를 거쳐 오늘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신학자들이 노력한 결과였다. 시대에 따라 정통신학으로부터 자유신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신학적 경향을 보이며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종교개혁기에 형성된 칼뱅의 개혁신학은 세계 신학의 주류를 이루며 복음과 함께 한반도에 들어왔다. 현재 한국 신학계는 기독교학회와 한국복음주의신학회, 개혁주의신학회 등이 중심을 이뤄 세부 전공 학회와 함께 교회를 위한 신학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신학계에서는 한국교회 부흥에 기여한 많은 신학자들 중에 박형룡 김재준 이종성 박사를 한국의 3대 신학자로 평가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장로교 개혁주의신학의 노선에 있다는 점이다. 한반도에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들의 신학과 맥을 같이 하는 셈이다. 이들의 신학 경향을 우리는 정통신학(박형룡) 진보신학(김재준) 통전신학(이종성)으로 이해할 수 있다. 오늘날 사회적 용어로 보수 진보 중도라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 같다.
칼뱅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심은 박형룡
한국의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대표하는 죽산(竹山) 박형룡(朴亨龍·1897∼1978) 박사는 대한제국 원년인 1897년 평안북도 벽동군 운서면에서 출생했으며 어머니의 영향으로 소년 시절에 신앙을 갖게 됐다. 어려서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했고 숭실전문학교를 거쳐 캠벨(감부열) 선교사의 도움으로 미국 프린스턴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그가 유학한 1923년 당시 미국 신학계는 근본주의와 현대주의의 논쟁이 치열했는데 그는 프린스턴에서 보수적 정통주의 신학자들인 메이첸과 핫지, 워필드 등의 가르침을 받고 장로교 개혁신학의 전통에 서게 된다. 그는 신학 저술에서 자신은 일편단심 한국장로교회의 전통적 정통신학을 보수하기 위해 힘썼다고 밝히고 있다.
박형룡 신학 연구가인 총신대 김길성 교수는 “사도 바울과 아우구스티누스를 거쳐 16세기 장 칼뱅이 정립하고 18∼19세기 프린스턴 신학자들에 의해 체계화된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한국교회에 뿌리내리게 한 신학자가 죽산”이라고 평가했다. 현재 한국교회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보수주의 교회를 뒷받침하는 신학이 바로 개혁주의 정통신학이다.
죽산은 숭실전문학교 시절 전국 순회강연을 통해 민족정신을 일깨우다 일경에 체포돼 10개월의 옥고를 겪었으며, 1938년 장로회신학교가 신사참배로 폐교되자 일본과 만주 등지에서 망명생활을 하다 광복 후 귀국해 고려신학교 교장을 역임했다.
신학교육에 대한 사명감으로 1948년 장로회신학교를 세웠으며 1951년부터 장로회총회신학교에서 교수 및 학장을 역임, 수많은 후학을 지도하다가 1978년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박형룡 박사 전집’(20권) 등 많은 저술과 사후에 개정된 ‘조직신학’(7권)으로 보수적 개혁주의 정통신학을 집대성했다.
한국 진보주의 신학의 길을 연 김재준
한국의 진보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장공(長空) 김재준(金在俊·1901∼1987) 박사는 1901년 함경북도 경흥에서 출생해 청년기에 신앙을 갖게 됐다. 그는 어려서부터 유학자인 아버지로부터 한문을 익혔으며 일본 도쿄 아오야마(靑山) 학원과 미국 프린스턴신학교 및 웨스턴신학교에서 공부했다.
일제의 신사참배 요구를 거부해 평양 장로회신학교(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가 폐쇄되자, 그는 ‘조선인에 의해 세워진 학교에서 조선인이 조선인을 교육하자’는 선각자 김대현 장로를 도와 조선신학교(현 한신대)를 설립했다. 성서비평학 수용 문제로 조선예수교장로회와 갈등을 겪었으며 성서무오설을 부정한다는 비판을 받고 1953년 대한예수교장로회(예장)로부터 제명을 당했다. 이 사건이 계기가 돼 장공을 중심으로 예장의 일부 목회자들과 대한성공회가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김재준 신학 연구가인 한신대 신대원장 연규홍 교수는 “장공 선생은 성서의 권위와 영감설을 부정한 것이 아니라 ‘성서를 성서 되게 하자’는 종교개혁의 모토에 일생 충실했다. 그는 자유주의 신학자가 아니라 ‘자유의 신학자’였다(딤후 2:9)”면서 장공에 대한 일부 신학자들의 오해를 지적했다.
장공은 ‘십자군’ ‘제3일’ 등의 신학지를 발행하면서 자신의 신학을 정립했다. 서울 경동교회를 담임하고 기장 총회장을 역임했다. ‘김재준 전집’(18권) 등 조직신학과 윤리학 분야의 저서와 강의를 통해 진보적인 한국 신학을 체계화해 많은 후학을 길렀다. 만년에는 삼선개헌을 반대하는 등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으며 1987년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통전적 신학을 이끈 신학자 이종성
한국의 통전적 신학(統全的 神學)을 체계화한 춘계(春溪) 이종성(李鍾聲·1922∼2011) 박사는 경북 의성에서 출생했다. 전통적인 유교 가정에서 성장해 큰 누나의 도움으로 일본 교토에 정착해 낮에는 직장생활을 하고 밤에는 리츠메이칸중학교에서 공부했다. 그는 중학교 시절 누나를 따라 교토한인교회에 출석하면서 복음에 대한 사명감을 갖게 됐다.
도쿄신학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52년 목사 안수를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루이빌신학교에서 조직신학을 전공했다. 샌프란시스코신학교에서 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장로회신학대(장신대) 교수와 총장을 역임하며 많은 후학을 양성했다. 은퇴 후 한국기독교학술원을 설립해 집필에 전념, ‘춘계 이종성 저작 전집’(전 40권) 등 많은 저술을 통해 통전적 신학을 정립했다.
그의 통전적 신학은 칼뱅주의와 바르트주의를 균형 있게 받아들여 조화와 통일성을 추구한다. 장신대가 추구하는 신학이 바로 이종성의 이러한 신학방법론에 의한 것이다. 예장통합에서는 이를 ‘성서적 복음주의 신학’이라 부른다. 예장 신앙고백이 이를 반영하고 있다.
이종성 신학 연구가인 장신대 최윤배 교수는 “통전신학에서 통전의 의미는 전체를 아우르고 조화시키며 통합한다는 뜻이며 좌우와 상하, 긍정과 부정, 개별자와 보편자, 특수성과 일반성, 그리고 믿음과 실천을 아우르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통전주의는 혼합주의나 절충주의를 경계하며 온전성, 즉 온전주의를 추구한다.
오늘날 교회가 추구하는 에큐메니컬 정신과도 일맥상통하는 것이다. 춘계는 한국교회와 신학계의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고 소통하기 위해 헌신하던 중 2011년 주님의 부름을 받았다.
글=김성영 목사 (전 성결대 총장)
[영성의 현장을 찾아서 <제5편>] 한국교회 부흥과 개혁 위한 신학적 토대를 세우다
입력 2017-05-29 00:03